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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Mar 11. 2022

2021년 IAP 레지던시 프로그램, JI PARK

2021년 IAP 레지던시 프로그램 <IAP 창작 프로젝트>,

융합된 음악적 흐름에 진화를 거듭 해내고 있는 지박(JI PARK)    

 

가느다란 선이 음률을 이루며 여러 조각으로 파열을 이룬다. 그 파열은 다시 거대한 음곡을 지으며 청자를 품어 안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지켜봤던 뮤지션 가운데 누구보다 인상적인 음악적 폭과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뮤지션이 지박(JI PARK)이다. 그의 음악에는 병존과 공생을 넘어선 다양함과 독특함이 감상에 파이고 또 끊이지 않고 흐르는 특징이 존재한다.  

지박은 가능한 모든 영역에 걸치는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계 전반에 획을 그어 나가고 있는 현대무용 음악감독이자 작곡가, 첼리스트이다.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출신인 그는 살롱 드 오수경의 멤버로 활동하며 2014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데뷔 이후 ‘지박컨템포러리 시리즈’라는 타이틀로 20장 가까운 컨템퍼러리 콘텐츠를 발표하며 작품을 통한 소통에도 공을 들여 나오고 있다.           

지박은 2019년 11월 말에 의미 있는 두 장의 음반을 동시에 내놓았다. [L'Inferno : Adapted Soundtrack Vol. 1]과 [DMZ]가 바로 그 작품이다. 연말부터 화제에 올랐던 두 작품은 그가 인천아트플랫폼(IAP)의 입주 작가로 선정된 이후의 인연을 토대로 제작되었고 발매될 수 있었다. 두 작품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협업 뮤지션들과의 조화에 있었다.

2021 4회째를 맞이했던 <IAP 콜라보 스테이지> 둘째  무대에서 지박이 지닌 융향력은 다시 한번 빛이 났다.   무대는 18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 비롯해서 ‘최우수 포크앨범 ‘최우수 포크노래 수상한 정밀아와 VRI 스트링 콰르텟이 함께 나섰다. VRI 스트링 콰르텟은 지박이 이끄는 현악 4중주단으로 지박은   무대를 포함해서 이미 여러 차례 <IAP 콜라보 스테이지> 무대에 올랐던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뮤지션 집단의 조합은 2021 <IAP 콜라보 스테이지> 프로그램에서 가장 이질적인 조합으로 평가되었지만, 동시에 가장 주목받는 무대로 갈채를 이끌어냈다.      


IAP 입주 작가로 선정된 이후 지박의 연주와 창작 활동은 큰 도약의 길에 접어들었다. 지박은 입주 작가로 활동하던 시기에 발표된 [DMZ]로 한국대중음악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평단에서도 고른 인지도를 쌓아냈다. [DMZ] 작품 당시 구상하던 리서치와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준비하고 펼쳐진 2021년 IAP 레지던시 프로그램 <IAP 창작 프로젝트> 무대는 지박컨템퍼러리 시리즈의 21번째 무대라는 의미를 겸하며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음향과 무대, 그리고 시각적인 효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또한 이번 무대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이후라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 문화, 과학 등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한 음악적 탐구와 표현이 돋보인 무대였다.       

    

질서를 내포한 혼돈, 그 끝에서 새로운 시대를 펼쳐낸 2021년 <IAP 창작 프로젝트>

박용은(1st Vn), 주소영(2nd Vn), 이승구(Va)와 지박으로 구성된 VRI 스트링 콰르텟의 이번 무대에는 타일러 길모어(Tyler Gilmore)의 사운드 아트가 더해져 준비되었다. 미국 서부의 와이오밍 출신인 타일러 길모어는 이미지에 영감을 받은 음악을 주로 발표해 나오고 있는 뮤지션으로 지박과 음악적 영감을 고르게 주고받고 있는 작가이다. 지박이 직접 제작한 5미터 크기의 지름을 지닌 원형 스크린이 무대 정면과 바닥에 놓여 펼쳐진 이번 무대에서는 음악과 음향과 조화를 이룬 영상 역시 관객에게 큰 흥미를 전달했다. 이는 정승재와 김하림, 한희수, 민상용, 황세진, 김정민과 같은 IAP의 여러 스텝들의 역량이 적재적소에서 빛났던 배경을 지닌다.           

이번 무대의 주제는 ‘신트로피(Syntropy)’, 혹은 ‘Negentropy’ 정해져 기획되었다. 이는 무질서에서 질서의 형태로 변화하는 현상을 뜻하며,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동하는 모습을 의미하는 ‘엔트로피(Entropy)’ 반대되는 법칙을 의미한다. 1 세계대전(1914~1918) 2 세계대전(1939~1945) 이후 새로운 예술형식의 도래, 그리고 초현실주의가 확립된 1923 11월은 독일에서 양자역학이 발표되었던 시기였다.

신트로피 전쟁 이후라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문화·과학 등이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현상에 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이는 지박이 [DMZ] 작업하던 과정에서 이룬 내용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이번 무대에 차용될  있었다. 지박은 2021 IAP 레지던시 프로그램 <IAP 창작 프로젝트> 준비하며 서로 다른 분야지만 많은 변화를 공유하고 있었던 시대에 주목했다. 그리고  배경 속에서 일어났던 여러 혼돈이 많은 양의 질서로 다시금 변화하는 현상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미니멀한 작곡과 해체를 스트링 콰르텟의 미니멀한 작곡과 해체, 그리고 사운드 아트의 협연으로 완성해   있었다.  

         

“혼돈은 결국 많은 양의 질서를 내포한 상태이다.”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 <혼돈으로부터의 절서> 中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을 신청한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입장하고 고즈넉한 조명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 중앙을 중심으로 좌측에  명읜 현악 연주자들이 자리했고, 우측에 지박이 무게를 이룬 구조였다. 영상과 현악, 사운드 아트가 조화를 이루며  공연의 맥이 관객에게 분명하게 전달된 오프닝  ‘Ruins’ 괴기스럽고 소름을 돋게 만드는 음의 전개로 공연의 출발선에서부터 관객 모두를 잔뜩 움츠리게 만들었다. 우아한 곡조의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협연이 인상적이었던 다음  ‘The People’ 루프 음과 첼로의 상승과 혼미한 여상의 번짐 속에서 새로운 전환을 예고했다. 4명의 현이 풀로 연주되며 시작된 ‘Magritte’ 밝은 톤의 사운드로 변화를 이끌었고, 공연 타이틀인 ‘Syntropy’ 대한 각인을 분명히 밝혀낸 순서였다. 다음  ‘The War’ 제목에서 연상되듯 광폭하고 맹렬한 현악의 울림이 전투와 폭격의 이미지를 띄며 공연에 긴장감을 더해 줬다.      


물 위를 영롱하게 나뒹구는 물방울이 연상되듯 뜯기는 현들의 울림과 너풀대듯 살랑거리듯 귀를 간지럽게 만드는 첼로와 바이올린의 협주는 해체되고 분리된 현실을 다시금 상승된 곡조로 이끌었다. 그 안에는 공포스러운 위험과 혼돈의 현실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무질서와 질서의 양극단을 빠르게 오가는 듯 분주했던 ‘Garden Of Water’는 중첩적이고 현대적인 어법이 현란하게 흩뿌려진 순서였다. 다음 곡은 공연장 공간을 넓게 오가며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동하는 모습을 표현한 ‘Entropy’였다. 타악과 비트가 엇갈린 루프 음 위에 멤버 전원의 현악이 쏟아내는 음의 파편이 고르게 터진 ‘Irreversible’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을 토로하듯 현란한 무대를 연출했다.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듯 단아하게 번진 ‘The Air’, 무대 중앙 바다에 놓인 원형으로 나온 멤버들이 등을 돌린 채 연주를 이어간 ‘Duchamps’와 ‘Surrealism’는 새로운 질서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처절한 세상의 모습을 연출하는 듯 연속적인 불협화음의 울림이 눈에 띄는 곡이었다. 어느덧 균형을 보이는 조화로운 영상과 함께 규칙적인 연주가 새로운 이념과 철학, 이상이 생성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새롭게 결합된 질서를 표현하는 연주의 합이 매력적으로 전개되었다. 균형 잡힌 물체들의 움직임을 보이는 영상과 함께 짜임새 있는 현의 울림이 곁들여진 마지막 곡 ‘Syntropy’로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연주를 마친 지박은 무대 중앙으로 나와서 “오늘 공연된 음악 외에도 새로운 음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공연의 사운드 아트를 담당한 타일러 길모어가 공연 현장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내년에는 오늘 공연 이상의 합을 지닌 협연이 예정되어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코로나19를 지나 새로운 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지만, 모든 분들이 건강하길 바란다.”며 고마움의 인사를 더했다.           

55분 여 동안 진행되고 완료된 이 날 공연은 IAP와의 인연 속에서 성장과 진화를 거듭할 수 있었던 지박과 VRI 스트링 콰르텟의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2021년 <IAP 창작 프로젝트> 무대는 기획과 연출은 물론 배가된 공연 문화의 포용성까지 보여준 매력적인 공연이었다. IAP의 다채로운 기획과 창작 프로그램을 통해 향후에도 보다 실력 있고 가능성을 지닌 음악인들이 함께 해 주길 고대한다.


고종석(Go Jongseok) : 1973년에 태어났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다. 주요 저서로는 『신촌 우드스탁과 홍대 곱창전골』이 있으며, 공저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신해철 다시 읽기』 등이 있다.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여성가족부 청소년유해매체물 음악분야 심의분과위원, 음반산업발전특별위원회 간사, 알레스뮤직 이사로 재직 중이다. 또한 월간 재즈피플, 파라노이드,  사이트 네이버, 멜론, 벅스 등에서 대중음악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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