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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May 29. 2017

데뷔 20주년, 자우림의 데뷔와 음악적 행보

시대가 요구했고 성취한 음의 쾌거자우림

데뷔 이후 20주년을 맞이한 자우림을 스트림에서 만나볼 수 있음에 반가움 크다. 여러 음악적 결과물과 과정, 그리고 음악 외적인 분야에서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영역 확장과 그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자우림의 데뷔 이전부터 현재까지 이들이 남긴 발자취와 여러 가치를 조명해 본다. 

데뷔와 동시에 현재에 이르렀던 자우림(紫雨林)

자우림의 등장은 한국대중음악의 새로운 단계를 잇는 쾌거였다. 이들은 대중에게 선을 보임과 동시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귀여운 외모에 이제껏 보지 못했던 여러 창법을 구사하는 여성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자우림은 데뷔와 함께 록의 대중화를 이끌어냈다. 또한 자우림의 음악을 통한 영역 확장은 밴드 음악이 주류에서도 성공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많은 제작자들은 자우림을 롤모델로 새로운 뮤지션 발굴에 공을 들이게 되었다.

자우림의 성공은 1990년대의 언더그라운드라 할 수 있는 인디 씬을 주류에 연결시켰으며, 홍대를 중심으로 하는 클럽 문화의 부흥과 여러 모던록 밴드의 등장을 촉발시켰다. 인디 씬은 1994년부터 홍대를 중심으로 라이브 클럽문화가 태동되면서 시작되었다. 초기 인디음악은 라이브에 주한 흐름을 보였지만, 1997년부터 인디 씬은 공연보다 음반 위주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1995년부터 시작된 자우림의 음악적 맥은 라이브와 음반을 자체적으로 아우르는 인디 정신을 상징하며 성장했다. 

자우림은 공식적으로 1997년 데뷔를 이룬 이후 단 한 차례도 멤버 변동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는 음악을 향한 멤버간의 끈끈한 우정과 신념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명료한 길을 걸을 수 있었음에도 이선규와 김진만, 김윤아, 구태훈은 함께 해서 더 배가될 자신들의 미래에 거침없는 투자를 감행했다. 탄탄한 기본기와 멤버 전원의 합을 이룬 연주, 그리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끼를 바탕으로 자우림은 데뷔 이후 곧장 대형 밴드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밴드명처럼 자우림의 이미지는 신비와 환상, 그리고 애정으로 귀결된다. 데뷔부터 2013년까지 총 9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으며, 2장의 앨범을 일본에서 발매했다. 자우림의 창작은 데뷔 이후부터 줄곧 김윤아와 이선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나왔고, 매 앨범마다 변화된 사운드와 여러 메시지를 담아 나왔다. 또한 자우림은 과거 국내 가수와 해외 가수의 곡을 리메이크하며 자신들의 음악성을 확장시켜 나왔다. 1999년 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를 리메이크해서 수록했던 옴니버스 앨범 [77 99 22] 이후 <나는 가수다> 등을 통해 이전에 히트한 명곡들을 자신들만의 음악으로 재해석했다. 특히 2005년 작품 [靑春禮讚]의 수록곡은 ‘청춘 예찬’을 제외한 14곡이 해외 유명 뮤지션과 밴드의 곡으로 구성되었다. 멤버 전원의 연주와 가창이 돋보였던 이 앨범은 자우림 음악의 깊이와 연륜을 읽어낼 수 있는 선곡 역시 인상적이었다.

자우림(JAURIM)의 결성 전후 속에서 함께 했던 이들

두 살 터울인 김윤아와 구태훈의 첫 만남은 그녀의 과외 선생님이었던 변영삼이 결성한 밴드 풀카운트(Full Count)에서였고, 두 사람은 클럽 재머스에서 재회한 이후 몇몇 밴드에서 함께 활동하다 순차적으로 자우림에 안착했다. 변영삼은 김윤아와 구태훈이 뮤지션의 길을 나서는데 적잖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1996년 12월에 인디 레이블 강아지문화예술을 설립해서 성기완과 옐로우 키친(Yellow Kitchen), 허클베리핀(Huckleberry Finn), 마이 앤트 메리(My Aunt Mary), 갱톨릭, 3호선 버터플라이 등 다양한 음반을 제작했다. 강아지문화예술의 ‘강아지’는 친구 권범준이 고등학교 때 결성했던 밴드명이였다. 권범준은 1997년 뒤늦게 변영삼이 설립한 레이블 강아지문화예술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권범준은 박현준과 달파란이 이윤정의 탈퇴 이후 결성한 삐삐롱스타킹의 보컬 고구마와 동일 인물이다. 변영삼과 고구마가 리딩하던 강아지문화예술은 자우림의 뮤직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에 부분적인 영향을 끼쳤다. 


향후 인디 씬을 주도하는 변영삼, 그리고 오랜 음악적 지우로 남게 될 구태훈과 함께 풀카운트에서 활동하던 김윤아는 또 다른 밴드 우드차일드에서 보컬과 건반을 담당했다. 산울림 음악을 주로 카피하던 밴드 C.C.R(Choco Cream Rolls)로 활동하던 이선규와 김진만은 보컬 영입을 고려하던 중 우드차일드에서 노래하던 김윤아를 마주한다. 그녀의 가입과 함께 소개받은 구태훈이 마지막으로 합류하면서 새로운 밴드 미운오리가 결성되었다. 미운오리는 클럽 블루 데빌에서 정기적인 라이브를 진행하며 영역 확장에 나섰다. 당시 클럽 블루 데빌에는 한국 모던록의 선구자로 인정받는 이승열과 방준석의 유앤미블루가 라이브 무대를 이끌고 있었다. 미운오리로 활동하던 당시 자우림의 모든 멤버들은 클럽 블루 데빌에서 유앤미블루와의 음악적 연대와 교감을 통해서 사운드의 질감과 송라이팅 등에 확장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데뷔 당시의 자우림(紫雨林), 오래도록 각인될 하나의 이미지

“편견을 버리고 우리의 음악을 들어 달라.” 이 말은 자우림이 데뷔 당시에 한 월간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토로했던 이야기이다. 자우림은 ‘Hey Hey Hey’가 히트하며 주목을 받던 1997년 당시 ‘댄스의 열풍을 록으로 바꾸겠다.’는 출사표까지 던졌었다. 

자우림 음악은 김윤아가 작사.작곡한 음악과 그녀만이 연출할 수 있는 가창, 그리고 이선규가 창작한 음악과 그가 연주하는 기타를 중심으로 한다. 김윤아의 가창은 이미 정평이 나있고 이후 글 내용에도 언급이 되겠지만, 이선규의 연주는 한 번 즘 깊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선규는 1990년대 중반까지 단대부고의 각시탈과 함께 최정상급 고교밴드로 인정받던 센세이션에서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었다. 센세이션은 시나위의 신대철과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 등 실력파 뮤지션들을 다수 배출시켰다. 김진만은 이선규를 처음 만났을 때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Bark At The Moon’을 열창하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C.C.R 활동 당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이선규는 기타 연주에 전념하기 위해 전문 보컬리스트 영입에 긍정적이었을 만큼 자신의 연주에 대한 열정이 깊은 뮤지션이다. 이선규의 기타는 장르적으로 정통 헤비메탈부터 스래쉬메탈, 그리고 블루스와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과 스케일을 전개해 나왔다. 한 마디로 자우림 음악의 사운드 축은 이선규가 펼쳐온 연주라인이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운오리로 이적하기 직전 김윤아는 솔로 활동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한 차례의 합주 속에서 음악적으로 분명한 빛을 본 듯 했다.”고 회상했던 것처럼 미운오리의 탄생은 자우림 멤버 모두의 운명이었다. 미운오리는 라이브를 주기적으로 펼치며 3개의 데모 테이프를 제작했다. 또한 반응이 좋았던 곡들을 골라서 베스트 형식의 카세트테이프를 추가로 제작해서 팬과 음악 관계자들에게 배포했다. MBC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영화 <꽃을 든 남자>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면서 미운오리는 밴드명을 자우림으로 바꾸게 된다. 새로운 밴드명 자우림을 직접 지었던 김윤아는 “우리들의 음악이 어떤 메시지나 장르로 전달되기 이전에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하나의 이미지이길 원해서 짓게 되었다.”고 밝혔었다.

자우림(JAURIM)과 영화 <꽃을 든 남자>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행보를 옮긴 황인뢰 감독의 변신과 영상 산업에 새롭게 포석을 마련한 방송국이 제작자로 나섰던 영화 <꽃을 든 남자>는 보통 사람들의 희망어린 사랑이야기를 시적이고 서정적인 기운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는 자우림의 가치와 이상이 잘 어울리는 부분이다. 

1997년 어느 날, 매주 목요일에 클럽 블루 데빌 무대에 오르던 미운오리는 토요일 메인밴드였던 유앤미블루의 부재를 대신해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 날 그 자리에서 미운 오리는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한 운명을 마주하게 되었다. 영화 <꽃을 든 남자> 사운드트랙에 3곡의 데모곡을 제공한 이후 미운 오리는 자우림으로 밴드명을 교체하고 ‘Hey Hey Hey’를 녹음해서 참여했다. 컴퓨터 음악을 배제한 채 오케스트라의 화음과 선율이 주도한 트랙이 주를 이룬 이 사운드트랙에는 유앤미블루의 방준석이 느린 템포로 애틋하게 들려주는 록발라드 ‘꽃을 든 남자’와 그리움이 짙은 여운을 남기는 이상은의 재즈 넘버 ‘당신 생각에’가 함께 수록되었다. 이처럼 꽃향기 자욱한 사랑의 풍경을 연출했던 영화 <꽃을 든 남자> '미운오리의 화려한 자줏빛 비상’을 이끌어 낸 의미있는 지닌 작품이었다. 

모던록과 얼터너티브 사이김윤아를 중심으로 본 음악적 가치

자우림의 등장 이전 이윤정을 앞세운 삐삐밴드와 주다인의 주주클럽이 존재했고 비슷한 시기에 박혜경의 더더도 등장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1992년부터 포 넌 블론즈(4 Non Blondes)의 린다 페리(Linda Perry)와 크랜베리스(Cranberries)의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O’Riordan), 그리고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과 같은 여성 뮤지션과 그들을 프런트로 내세운 여러 밴드가 등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여성 뮤지션을 보컬로 내세운 밴드는 댄스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1997년 당시에 위험할 수 있는 시도였다. 이전 사례로 봤을 때 가능성은 다분했지만, 검증되지 않은 밴드의 음악에 투자를 한다는 점은 나름 큰 모험이었다. 그럼에도 자우림의 가치가 인정받고 연이은 러브콜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점은 오랜 라이브 실력과 단 한 곡의 노래로 대중에게 각인된 신선함, 그리고 무엇보다 탄탄한 멤버들의 연주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정확히 데뷔 당시 자우림 음악이 지닌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자우림은 1997년 당시에 인디 씬에서 활동하던 생소한 라이브 밴드임에도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멜로디와 흥겨움, 그리고 시사성을 띄면서도 예쁜 노랫말을 지니고 있었다.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의미를 지닌 밴드명은 단순하지만 가볍지 않고, 또한 서정적이지만 가라앉지 않는 한 폭의 채색된 회화를 연상시켰다. 데뷔 당시에 자신들의 음악에 대해 자우림 스스로 ‘민트록’으로 지칭했지만, 자우림의 깊은 음악적 겹은 모던록과 얼터너티브의 경계를 오가며 정의 내려진다. 자우림의 등장 이후 나타났던 조유진과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아야 카미키(Aya Kamiki) 등은 자줏빛 비를 맞고 피어난 듯 한 또 하나의 경쾌함이었다. 간결한 멜로디, 그러나 짙은 연주와 풍자적이면서도 진의 깊은 가사 등 자우림의 음악은 엷은 선이 수없이 모여 여러 장르를 아우른 다홍빛의 조화였다.

음반 제작시스템과 공연 문화를 선도했던 여러 노력들

사운드홀릭은 자우림의 드러머 구태훈이 2003년에 설립한 음반 및 공연, 매니지먼트 전문 레이블이다. 현재 소속 뮤지션은 자우림과 글랜 체크(Glen Check),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 전기뱀장어 등이다. 자우림은 최초 난장뮤직 소속이었으나 난장뮤직이 T엔터테인먼트와 합병되면서 6집까지 T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했다. 

이후 2007년에 계약이 해지되면서 매니저 김영균과 함께 레이블 러브공작단(裸婦工作團)을 설립했다. 러브공작단은 자우림이 데뷔하던 시기부터 함께 해 나온 음악동료와 스텝으로 구성된 비밀 모임의 호칭이었다. 자우림은 이 모임이 특별했던 만큼 동명의 레이블을 통해서 현재까지 음반 제작을 진행하고 있으며, 엄밀히 사운드홀릭은 이들을 관리하는 소속사이다. 사운드홀릭은 사세를 확장해서 사운드홀릭 엔터테언먼트와 공연장 사운드홀릭 시티, 그리고 그린플러그드 서울 등 크고 작은 페스티벌을 진행하며 밴드 음악의 성장과 확장에 큰 기여를 담당해 왔다.

2007년 자우림은 데뷔 10주년을 자축하며 대외 활동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같은 해 7월 김윤아는 영화 <열세살, 수아>에 특별출연을 했고, 자우림은 사운드트랙에 두 곡을 제공하며 팬들의 갈증을 적셔줬다. 정규 작품이 아님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프리지아’는 러브공작단을 통해 디지털 싱글로 발표되었으며, 이는 러브공작단의 첫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프리지아’와 함께 발표된 ‘꽃’은 자우림의 전신 밴드인 C.C.R 1집에 수록된 곡이다. 원곡에서는 이선규가 노래를 담당했지만, 디지털 싱글에는 김윤아가 새롭게 가창을 담당했다. 

자우림의 음반 제작과 공연에서 다양한 음의 연출을 위해 건반 연주자를 주축으로 몇몇 뮤지션들과 함께 해 나왔다. 이는 씬의 활성화와 변화감을 위한 자우림의 안배이자 노력이었다. ‘자우림 제5의 멤버’로 불렸던 키보디스트 황준익은 1997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12년 여 동안 자우림의 음악과 함께 하며 정식 멤버와 다를 바 없는 공존을 보여줬다. 1998년 보컬밴드 오앤스쿨(O. N School)의 멤버로 도레미에서 앨범 발표를 하는 등 가수 경력이 있는 김윤아의 남동생 김윤일은 주로 코러스를 담당해 나왔다. 라이브와 레코딩 세션에는 자우림의 성장과 다름없이 인디부터 주류까지 아우르는 키보디스트 고경천도 함께 한다. 그리고 훵크 소울 밴드 커먼 그라운드는 자우림 5집 앨범 [All You Need Is Love]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JTBC 로고 음악에 김윤아와 함께 하기도 했다.


커다란 풍파와 멤버 변동도 없이 어느덧 결성 20주년을 맞이한 자우림. 지난 시간 동안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과 활동을 통해 대중과 함께 호흡해 온 자우림. 이들의 발걸음은 새로운 변화의 화두였으며, 주류와 비주류의 가교 역할이었다. 그리고 음악을 통한 작지만 명쾌한 혁명이었다. 새로운 출발선에서 진홍빛 흐름을 이어나갈 자우림에게 고마움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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