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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Jun 15. 2017

핑크 플로이드가 지나온 음악의 길

전 세계 음악사 곳곳에서 빛나는 핑크 플로이드 음악의 시작과 지나온 길

결성 초기에 싸이키델릭과 스페이스록 사운드로 분류되었던 핑크 플로이드는 1964년 결성된 영국 밴드이다. 건축학도였던 닉 메이슨(Nick Mason. 드럼)과 로저 워터스(베이스, 보컬), 릭 라이트(오르간) 등으로 활동하던 핑크 플로이드는 결성 초기 블루스에 기반한 록음악을 구사했지만, 시드 배릿(기타, 보컬)의 가입을 전후해서 싸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적인 성향의 음악을 덧입히기 시작했다. 

1967년 EMI와 계약을 체결한 핑크 플로이드는 데뷔 싱글 ‘Arnold Layne’을 통해 영국 차트 20위에 올랐고, 다음 싱글인 ‘See Emily Play’가 차트 6위에 오르며 탄탄한 출발을 보였다. 이후 순차적으로 싸이키델릭 스타일의 데뷔 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을 내놓으며 앨범 차트에서도 화려하게 등장했다. 비틀즈(Beatles)의 [Revolver]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과 함께 영국 싸이키델릭의 효시로 손꼽히는 이 앨범은 시드 배릿의 천부적인 역량과 아티스트로서의 기질이 특히 빛나는 작품이다. 그러나 앨범 발매 이후 핑크 플로이드 음악의 중심을 담당하던 시드 배릿이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자, 잔여 멤버들은 제프 벡(Jeff Back) 영입을 시도하는 등의 노력 끝에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 기타, 보컬)를 새롭게 맞이하게 된다. 

이 당시를 즈음해서 핑크 플로이드는 영화 음악과 인연을 맺으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1966년 피터 화이트헤드(Peter Whitehead) 감독의 영화 <Tonite Let's All Make Love In London>에 ‘Interstellar Overdrive’와 ‘Nick's Boogie’를 삽입한 핑크 플로이드는 1969년 바벳 슈로더(Barbet Schroeder) 감독의 영화 <More>의 음악 작업을 맡아서 영국 차트 9위에 오르는 사운드트랙 [Soundtrack From The Film More]를 내놓았으며, 또 다른 영화인 <La Vallée>의 음악까지 담당하게 된다. 


1972년 핑크 플로이드의 7집으로 기록되는 앨범 [Obscured By Clouds]는 당시 이 영화의 사운드를 기조로 완성된 작품이기도 하다. 시드 배릿의 탈퇴 이후 전체적인 곡의 구조와 가사를 담당하기 시작한 로저 워터스는 블루스적인 멜로디 라인과 싸이킬데릭한 화음의 구도를 잡았던 데이비드 길모어, 릭 라이트와 함께 팀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이러한 기운이 만개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시드 배릿이 빠진 이후 첫 번째 앨범인 [A Saucerful Of Secrets]를 발표하며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 작업에 집중했다. 하드록의 기조 위에 아방가르드와 재즈의 즉흥적 요소까지 가미되었던 이 당시의 핑크 플로이드는 초기 앨범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역작 [Ummagumma]와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을 이룬 [Atom Heart Mother]를 1969년과 1970년에 차례로 내놓게 된다. 앨범 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를 기록한 이후 핑크 플로이드는 싸이키델릭의 흐름의 끝을 알리는 명작 [Meddle]을 내놓게 되는데, 이 앨범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작품 가운데 대곡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Echoes’가 담겨져 있다. 

이후 몇 장의 앨범과 영화 음악, 라이브를 소화해 가며, 핑크 플로이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에 대한 지향점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균형감은 멤버들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감각과 시도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The Dark Side Of The Moon], [Wish You Were Here], [Animals], [The Wall] 등은 핑크 플로이드는 물론 전 세계 대중음악사에 손꼽히는 결과물로 기록되고 있다. 핑크 플로이드는 1973년 미국 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를 기록하고, 차트에서 741주 동안 머무르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는 희대의 명반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나 기록적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결과와 평론가들의 극찬을 이끌어낸 작품이다. 


아직까지도 꾸준한 리퀘스트를 이끌고 있는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4천만장 이상의 판매를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인 컨셉이 먼저 눈에 띄고 여러 기술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빛이 났던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그룹 초기의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어느 정도 덜어내고, 재즈와 블루스의 화성, 그리고 효과음을 뒤섞은 사운드 연결 방식이 성공의 주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적인 화법과 반전주의적 기취가 담긴 가사의 주제의식은 이 앨범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너무나 큰 성공에 부담을 느낀 핑크 플로이드는 하우스 오브젝트(Household Object)라는 프로젝트 등을 통해 몇 가지 시도를 진행하지만, 정규 앨범에 대한 작업으로 직행하게 된다. 

‘부재(Absence)’라는 주제를 차용했던 1975년 앨범 [Wish You Were Here]는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기록했고, 작품적인 측면에서 전작을 넘어서는 평가까지 얻어냈다. 두 작품의 연이은 성공은 로저 워터스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릭 라이트에 대한 로저의 해고로 팀의 분위기는 조금씩 곪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적잖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1977년 발표된 앨범 [Animals]는 많은 세션의 참여와 오케스트라 파트의 구성 등 제작을 위한 규모가 너무 크게 설정되면서 멤버들의 반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러나 펑크를 주로 한 간결한 사운드가 새롭게 주목을 받던 시기에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 농장’을 모티브로 제작된 [Animals] 앨범은 더욱 진보적인 단계를 이룬 핑크 플로이드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1979년 핑크 플로이드는 ‘소통과 단절’의 주제를 담은 명작 [The Wall]을 발표하며 새로운 기록을 다시 써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 앨범은 거대한 성공 앞에서 그룹의 갈등과 분열로 이어지는 아쉬운 대목을 남기기도 했다. 차트에서 15주 동안 정상을 차지하면서 1,1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이 앨범은 비틀즈의 해산 이후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두 장의 앨범을 지닌 그룹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또한 이 앨범은 1982년 알란 파커(Alan Parker) 감독과 밥 겔도프(Bob Geldof)가 주연한 영화 <Pink Floyd: The Wall>의 모티브로 차용되며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위해서 보컬 파트가 새롭게 녹음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로저 워터스의 독단이 극에 치달은 가운데 기획되고 제작되었던 이유로 멤버간의 균형이 확실히 깨져 보였다. 이는 1983년에 발표된 12집 [The Final Cut]에 이르러 잠정적인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음악의 내외부적 환경과 결과물 등 모든 부분에서 로저 워터스의 솔로 앨범의 뉘앙스가 강하게 풍겼던 이 앨범을 계기로 데이비드 길모어는 솔로 앨범 [About Face]를, 로저 워터스는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 등 또 다른 명작의 탄생이 이어졌고, 급기야 1985년 로저 워터스는 핑크 플로이드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Pink Floyd’라는 이름에 대한 사용과 관련해서 법적 분쟁을 진행하는 등 일련의 사건 속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잔여 멤버들이 시스템을 정리한 1987년 [A Momentary Lapse of Reason] 앨범이 발표된다. 로저 워터스가 담당하던 가사를 프로듀서 밥 에즈린(Bob Ezrin)이 담당했고, 릭 라이트는 정식 멤버로 재가입을 이루게 되었다. 차트에서의 자연스러운 흥행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데이비드 길모어에 주도된 인상이 강했던 이유로 과거 핑크 플로이드의 명성을 잇지는 못했다. 전열을 다시 한 번 재정비한 핑크 플로이드는 1994년 후기 명작으로 인정받는 [The Division Bell]을 내놓는다. 투어 멤버들의 가세와 데이빗 길모어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들은 결국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기록하는 맹위를 떨치게 된다. 또한 앨범과 관련된 투어를 진행하며 1995년에 발표된 라이브 앨범 [Pulse]는 ‘지상 최고의 라이브’ 앨범이라는 평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1996년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핑크 플로이드는 로저 워터스의 단독 내한 공연이 진행된 이후 2005년 자선 공연 ‘라이브 8’ 무대에서 로저 워터스와 함께 24년만에 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 당시 무대에서 멤버 전원이 서로 껴안고 격려하던 장면은 음악 매니아들에게 큰 선물이었다. 이후 핑크 플로이드의 재결성과 관련해서 여러 접촉이 진행되었지만, 결과는 불투명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6년 핑크 플로이드의 정신적 지주였던 시드 배릿이, 2008년에는 로저 워터스와의 묵은 때를 벗지도 못한 릭 라이트가 차례로 사망하고 만다. 2007년 5월 10일,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펼쳐진 시드 배릿 추모 콘서트에서 다시 한 번 함께 연주를 했고, 2011년 로저 워터스의 ‘더 월 라이브’ 투어에서 데이빗 길모어와 닉 메이슨을 포함한 3명의 기존 핑크 플로이드 멤버는 한 무대에 올라 ‘Outside The Wall’을 함께 연주했다. 이후 데이빗 길모어와 닉 메이슨은 [The Division Bell] 당시 함께 활동했던 세션을 바탕으로 2013년부터 새로운 앨범의 레코딩에 들어간다고 밝혔으며, 지난 2014년 11월 11일 핑크 플로이드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The Endless River]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 앨범은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역대 음반 중 사전 예약 판매량 1위였던 영국 아이돌 밴드 원디렉션(One Direction)의 [Midnight Memories]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등의 저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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