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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Jul 04. 2017

핑크 플로이드와 로저 워터스, 그리고 The Wall

25년만에 신보 발표한 로저 워터스 시리즈 - 1

로저 워터스의 사고와 음악세계 

프로그레시브록 역사상 가장 기괴한 사운드와 작풍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인물로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을 꼽을 수 있다. 연주는 물론 곡 작업 중에 불협화음을 모아서 여러 테마를 이끄는 혁신적인 연주를 감행했던 로버트 프립은 음의 긴장감을 통해 전반적인 감상을 공포스럽게까지 이끈 뮤지션으로 분류된다. 로저 워터스의 음악세계는 로버트 프립과 공존하는 실험적인 사운드와 음악에 흐르는 그만의 독보적인 철학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10대 시절 로저 워터스는 비핵화를 주창하는 영국 청소년 평화 단체 YCND(Youth 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에 가입해서 활동한 적이 있다. 단체의 홍보 포스터 제작을 시작으로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로저 워터스는 이후 YCND의 의장으로 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던 로저 워터스의 음악은 듣는 것과 사고하는 것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독특한 사고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또한 그의 음악 안에는 반전과 반사회적인 주제, 그리고 풍자와 위트, 정신적 혼란이 공존한다. 

로저 워터스의 음악적 창작력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인 1970년대에 발표되었던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에는 이상의 기운이 강렬하게 채워져 있다. 

앨범 [Animals]의 시작과 마지막 트랙을 차지하고 있는 ‘Pigs On The Wing’ 1과 2는 핑크 플로이드의 어긋난 현실과 이상을 담고 있으며, 1971년 앨범 [Meddle]의 ‘Fearless’처럼 비정상적이고 혼돈스러운 심리를 표현한 작품 역시 눈에 띈다. 또한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Money’에서는 현대인의 광기에 짓눌린 현실과 자본주의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운드적으로도 로저 워터스는 여러 이펙트를 멜로디 안에 유연하게 이끌어 냈으며, 음의 여러 공간에 이를 삽입해서 전체 음악과 가사와의 조화 역시 이끌어 냈다. 


로저 워터스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후 삶을 마감했던 아버지와 활동 초기부터 공감대를 크게 형성했던 벗 시드 배릿(Syd Barrett)의 ‘죽음’에 의한 ‘상처’를 음악에 담아 자주 연출했다. 이러한 주제는 [The Final Cut]은 물론 [Wish You Were Here]와 [Animals], [The Wall] 등 핑크 플로이드의 중기 대표작 안에서 로저 워터스의 창작을 주축으로 자주 표출되었다. 1987년 로저 워터스는 그룹을 탈퇴하면서 핑크 플로이드의 명예로운 해체를 요청했지만, 그 역시 지워져야 할 또 한 명의 ‘바람’이자, ‘대상’이 되고 말았다. 

로저 워터스 솔로 활동의 모체로 작용했던 ‘The Wall’

1945년 5월 8일 나치스 독일이 항복한 이후 얄타회담과 포츠담선언을 통해서 독일은 중앙 정부를 두지 않고 정지·경제 분야에 국한된 통일성을 부여받았다. 미국과 소련의 의견 충돌이 심화되면서 독일은 동독과 서독의 분단이 고착되었고, 동독에서 서독으로 월경해 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이에 동독 정부는 1961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경계에 45.1킬로미터 길이의 콘크리트 담장을 쌓기에 이르렀다. 이 담장은 ‘베를린 장벽(Berlin Wall)’로 불리게 되었고, 동독과 서독의 왕래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웃음이 번질만한 몇 가지 에피소드 속에서 1989년 11월 9일 마침내 베를린 장벽은 철거되었다. 

로저 워터스와 핑크 플로이드는 1980년 2월 7일 발표와 동시에 전 세계 차트를 석권한 앨범 [The Wall]의 라이브 투어를 LA 스포츠 아레나에서 시작했다. 이 투어는 1981년 6월 영국 런던 무대를 끝으로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로저 워터스는 [The Wall] 앨범 수록곡 26곡 가운데 23곡에 참여했다. [The Wall]은 실질적으로 그의 사고와 창작의 혼이 실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로저 워터스는 [The Wall]을 최초 기획했을 때 동서독으로 갈라진지 20년이 지난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질 것을 예측했던 것일까. 

로저 워터스가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가 아닌 솔로 뮤지션으로 큰 각광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던 작품 [The Wall]과 관련된 내용들이 꽤 존재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역사적인 사건 일 년 후 로저 워터스는 이미 발표되었던 최상의 아이템인 ‘The Wall’과 함께 라이브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연 ‘The Wall-Live In Berlin’을 기획하게 된다. 공연 장소는 베를린 장벽의 역사를 상징하는 포츠담 광장과 브란덴부르크 문 사이였다. 25m 높이에 170m 폭으로 벽이 설치된 무대에서 펼쳐진 이 공연은 공식적으로 20만 명이 관람했고, 1억 명 이상이 TV를 통해 시청했다. 

당대를 대표하던 여러 뮤지션이 함께 했던 이 날 공연의 마지막 순서에 무대 위 벽은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무너진 벽 아래에서 출연진 모두가 함께 부른 ‘The Tide Is Turning’은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이후 로저 워터스는 2004년에 ‘The Wall’을 소재로 뮤지컬을 만들었다. 2010년부터 3년간 로저 워터스는 ‘The Wall Live’로 명명된 새로운 ‘The Wall’ 투어를 시작했다. 이 투어는 핑크 플로이드의 마지막 ‘The Wall’ 투어 이후 29년,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진행된 ‘The Wall- Live In Berlin’ 이후 20년만의 공연이었다. 이 투어에서 로저 워터스는 4억 6천 만 달러에 육박하는 수익을 올렸다. 

무엇보다 자신의 음악에 환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던 이 투어에서 로저 워터스는 오랫동안 정지되었던 자신의 음악에 대해 스스로 갈구하게 되었다. 이미 이전부터 몇 곡의 신곡을 무대에서 선보였던 로저 워터스는 새로운 앨범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에 대한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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