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박치기'에 삽입되었던
남북 분단의 현실과 애환을 젊은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명작품으로 기록되었다. 극중 원류한은 리해랑에게 “죽는게 두렵나”면서 ‘임진강’을 불러달라고 한다. ‘연어’에 비유되었던 이들의 상황에 잘 어울린 노래 ‘임진강’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노래 ‘임진강’에 깃든 사연과 지리적인 위치에서 임진강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 본다.
임진강을 아시나요?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국경 지역이었던 곳. 강줄기 곳곳에 6.25 전쟁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고, 판문점과 임진각 등 남북 분단의 상징이 존재하는 곳. 서부 전선을 가로질러 김포 해안을 지나 서해까지 이어지는 길이 254km에 달하는 한강의 제 1지류인 임진강.
영화에 깃들었던 임진강
노래 ‘임진강’에 어린 여러 의미를 전하기 위해 임진강을 소재로 한 영화를 하나 더 소개한다. 제목 ‘박치기!(パッチギ!, 감독: 이즈츠 카즈유키)’. 2004년 일본에서 제작되었으며, 조총련의 애환을 푸근히 담아낸 영화였다. 영화 ‘박치기!’는 키네마 준보, 아사히 신문 등을 통해 ‘2005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었던 작품이다. 흥행은 물론 작품성에서도 크게 인정받은 명작이다.
영화의 무대는 1968년 교토. 일본 고등학생들과 조총련계 학생들 사이에는 하루도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매일 싸움이 계속 되는 가운데, 주인공 코우스케는 선생님의 지시로 조선고에 친선축구시합을 제안하러 가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여주인공 경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코우스케는 경자에게 조금씩 더 다가가기 위해 금지곡이었던 ‘임진강을 배우게 되었고, 점차 그 노래에 깃든 정서와 애환을 알게 된다. 영화는 화해와 사랑이 오가는 큰 줄기에 조총련의 시대상과 일본 내에서의 비극적인 생활상을 그득 담아내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8년은 전 세계적으로 큰 변혁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상과 더불어 재일조선인 문제까지 ‘박치기!’에는 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
영화 ‘박치기!’는 중학교 때 우연히 듣게 된 노래 ‘임진강’의 감동을 잊지 않고, ‘소년 M의 임진강’으로 소설화한 마츠야마 다케시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 책을 읽은 씨네콰논의 이봉우 대표가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과 함께 제작에 합의하여 완성을 이루게 되었다. 경자 역을 맡은 시와지리 에리카는 ‘박치기!’에서의 열연을 통해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했고, 일본의 대표적 꽃미남 배우 오다리기 죠와 시오야 슈운 등 일본 영화계의 유망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함으로써 시대를 넘어선 명작으로 인정받았다.
영화 '박치기'는 소재와 관계없이 다카하시 히로시의 만화 '크로우즈'를 원작으로 2007년 10월에 개봉된 영화 '크로우즈 제로'와 톤이 흡사한 특징도 지니고 있다.
음악으로 흐르는 ‘임진강’
영화 ‘박치기!’에 삽입되어 널리 알려진 노래 ‘임진강’은 1968년 일본 그룹 포크 크루세이더스(이하 포크루)가 열창한 ‘임진강(イムジン河)’을 기조로 한다. 포크루의 성공에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 곡은 이들의 히트곡 ‘돌아온 주정뱅이’와 ‘슬퍼서 참을 수 없다’ 사이에 알려진, 그러나 세상의 빛을 뒤늦게 보게 된 한이 깊은 노래로 기록되고 있다.
‘소년 M의 임진강의 마츠’야마가 일본어로 개사한 이 곡은 원래 북한에서 1957년 발표된 곡으로 월북 시인 박세영과 북한 태생인 고종환이 완성시켰다. 박세영 시인은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나 월북한 인물로 조선 프롤레탈리아 예술 운동에 굵은 선을 그었으며,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애국가를 작시한 주인공이다.
‘임진강’은 조국을 떠나 일본에서 온갖 냉소와 비애를 겪어야 했던 조총련들이 고향을 그리며, 언제, 어디서나 부르던 그들의 오랜 설움과 슬픔이 깊게 배인 노래이다. 말 그대로 조총련의 민중가요였던 셈이다. 휴전선 철책을 사이로 남과 북을 홀연히 오가는, 우리에게 지역적,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강줄기인 임진강을 통해 분단 상황에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깊이 담고 있는 곡이다. 가사를 잠시 살펴보자.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물새들은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강건너 갈밭에선 갈새만 슬피울고, 메마른 들판에선 풀뿌리를 캐건만
협동벌 이삭바다 물결우에 춤추니,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내고향 남쪽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싣고 흐르느냐"
정말 애절하지 않은가. 대학 시절 선배 한 분이 술에 취해 식탁에 끈적이던 귀에 살포시 걸어 줬던 곡. 흐느적이던 제 젊은 겹에 너무나 온유하게 달라붙던 노래.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남과 북의 실정과 분단의 공허함 밀려와 한참을 멍하게 만드는 노래이다.
노래 ‘임진강’의 탄생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포크루의 주요 곡으로 라이브를 통해 적잖게 소개되었지만, 노래 ‘임진강’은 대중들에게 아주 잠시간 동안만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포크루의 소속 ’음반사였던 도시바는 매우 높은 성공의 기대감에도 이 곡에 대한 발매를 포기해야만 했다.
‘임진강’의 싱글 발매를 바로 앞에 두고 있을 때, 조총련 측이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원래의 작사, 작곡가를 명시하고 원곡과 동일한 가사 수정’을 해야만 발표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남북 관계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예민한 내용이었던 원곡의 가사를 도저히 수정할 수 없었던 도시바는 결국 노래 ‘임진강’의 줄기를 자르고 만다.
이후 구전으로만 이어지던 노래 ‘임진강’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소개하던 한 일본 TV 프로그램에 소프라노 전월선이 출연해서 불러 다시금 화제를 모으게 되었다. 2002년 마침내 CD로 복각되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제대로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05년 영화 ‘박치기!’의 메인 타이틀로 사용되면서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다시 한 번 많은 관심을 이끌어 냈으며, 국내 유명 가수 양희은과 임형주, 적우 등이 리메이크를 진행해 나왔다.
‘임진강’ 에피소드
포크루의 두 번째 히트곡 ‘슬퍼서 참을 수 없다’는 ‘임진강’의 악상을 담고 있다. 위 글에 이어진다면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사실 ‘임진강’의 발매를 포기함으로써 많은 아쉬움을 갖고 있던 포크루의 멤버 가토 가즈히코는 ‘임진강’의 마스터 테이프를 역회전 재생, 즉 반대로 플레이를 진행시켜서 새롭게 곡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임진강’은 우리가 시위 현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등을 부르듯, 일본의 시위 현장에서도 고즈넉이 불러지던 노래이다. 정치, 사회적 주요 사건들과 함께 했던 ‘임진강’은 ‘전공투 발족’과 ‘도쿄대 야스다 강당 점거’ 등 1960년대 말 일본 사회의 주요 사건들을 환기시키는 시대의 송가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수 십 년이 흐른 2009년 10월 ‘임진강’을 탄생시킨 가토는 나가노 현의 한 호텔에서 목을 매어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강(江)임에도 불구하고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임진강. 한강의 여의도처럼, ‘초평도’라는 섬이 임진강에도 있다. 소중하고 희귀한 동식물이 살아 숨 쉬는 임진강과 초평도. 하지만 현재 임진강은 북한이 상류 지역에 황강댐을 만들어 물을 가둬 두는 바람에 수심이 과거10여 미터에서 4~5미터로 가라앉은 상태이다.
영화와 여러 가수, 한국과 일본, 북한의 정치.사회적 이슈 속에서 함께 했던 '임진강'과 관련된 소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