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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11. 2021

어쩔 수 없는, 믿음

 병동 복도를 걸었다. 환자가 그나마 체력의 고갈을 늦출 수 있는 운동은 이런 것 밖에 없다. 문이 열린 병실을 통해 들려오는 소음을 풍경삼아 었다. 우는 소리, 항암 부작용으로 반복되는 딸꾹질 소리, 기침 소리, 헛소리가 우거지다. 걷다 멈추고 걷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풀에도 독이 있는 것처럼 소리에도 독이 있다. 날카로운 독, 둔기처럼 묵직한 독, 뾰족한 독. 온 마음으로 해독하며 걸었다. 조금이라도 단단해질 체력만 생각하며 걸었다.


 한참을 걷는데 낯선 소리가 들린다. 병실에서 보호자가 의사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온 환자의 보호자였다. 움직일 수 없었다. 해독할 수 없었다. 늪에 빠진 것 같았다. 보호자는 아들의 치료를 거부하고 있었다. 발을 빼려고 노력했다. 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의사는 아들이 치료가 진행된다면 예후가 좋을 거라고 설득했다. 절박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보호자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겨우 늪에서 빠져나왔다. 병실에 들어가 소시지를 하나 들고 배선실로 향했다. 소시지를 전자레인지용 그릇에 담아 데우고 있는데 그 보호자가 배선실에 들어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다른 보호자에게 하소연하지 않던가. 몇 년 전에 딸도 큰 병에 걸렸는데 자연치료 덕분에 좋아졌다고 자신은 항암 같은 치료 없이 아들도 살릴 수 있는데 의사가 몰라 준다며.

 먹지도 않은 소시지에 체할 것 같았다.


 배선실에 갈 때마다 그는 매번 다른 보호자에게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납득시키려 하고 있었다. 덕분에 종일 병실에서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를 지날 때마다 늪에 빠지는 것 같았다. 체력을 보존하려던 노력이 체력을 갉아먹을 것 같았다.


 엄마는 도대체 치료도 하지 않을 거면서 병원에 왜 입원시킨 건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의료진이 퇴원을 권고했지만 그는 퇴원을 거부했다고 한다.  혈액종양내과병동은 장기 입원 환자가 많아 병상이 귀했다. 그가 간병하는 환자가 치료도 받지 않고 병상을 차지하는 동안 누군가는 입원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 혹은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다시 병동을 걷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그는 보호자들 사이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없었다. 더 이상 그가 설득하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나도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간병하는 환자가 있는 병실을 지날 때에는 종종걸음으로 지나쳤다. 지날 때마다 환자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져 보였다. 여전히 보호자는 치료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는 환자를 진심으로 간병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게 무서웠다. 다음에 병실을 지나칠 때는 종종걸음뿐만 아니라 눈도 감은 채 걸었다.


 나는 다행히 별 탈 없이 치료를 끝내고 퇴원했다. 퇴원 후 첫 번째 외래 때 그가 간병하던 환자가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이상 조치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서야 그는 의료진에게 치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소식을 전해 준 보호자는 간호사실 앞에서 간호사를 보는 그의 눈이 무서웠다고 한다. 많은 원망하는 눈을 봤지만 그렇게 원망하는 눈은 처음 봤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병동에서 그가 간병하는 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항상 지나칠 때마다 그의 목소리만 들렸다. 그는 환자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환자는 죽으며 그를 원망하는 눈으로 보지 않았을까. 아니면 포기하고 눈을 감았을까. 간호사를 바라봤다는 원망하는 눈을 떠올린다. 환자가 원망했다면 그는 자신을 향한 원망에 자신의 원망을 곱해 간호사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끔찍해졌다. 그가 또 누군가에게 자연치유를 시도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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