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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23. 2021

자던 중 배변 실수를 했다.


 고열을 앓던 도중에도 살겠다고 먹었던 음식이 문제였던 것 같다. 자던 중 밑이 축축해 눈을 떴다. 축축한 엉덩이의 촉감을 뒤로한 채 잠시 고민에 들었다. 엄마는 깨우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 냄새는 나지 않는데 혼자 수습할 수 있을까. 결국 혼자 수습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링거대를 잡고 일어섰다. 신발이 침대 밑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휘청거렸다. 신발을 포기했다. 맨발로 화장실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바지부터 벗었다. 노란 얼룩이 묻어있는 환자복 하의는 보기 흉했다. 상의도 벗으려고 했는데 단추를 풀 힘이 없었다. 하체만 닦고 변기에 앉았다. 샤워기를 노란 얼룩에 가져다 대고 물을 틀었다. 노란 얼룩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끄러움도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침대를 수습하지도 못한 것보다 환자복 하의에 사라지지 않는 얼룩이 더 수치심 들었다. 


 밖이 어수선해졌다. 보호자들이 엄마를 깨운 것 같았다. 비몽사몽 한 목소리로 엄마는 나를 찾았다. 나는 낮고 우울한 목소리로 바지를 달라고 했다. 상의만 입은 채 변기에 앉아 침대가 정리되기를 기다렸다. 문을 살짝 열어 바지를 받고 젖은 바지를 넘겨주었다. 변기에 앉아 천천히 바지를 입었다. 젖은 바닥 덕분에 바지 밑단이 축축했다. 화장실을 나오니 침대는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별 일이 아니었다는 듯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도 우리에게는 평범한 일이구나. 평범한 일이라 아무렇지 않구나. 나는 조용히 침대에 가 누웠다. 바지 밑단만큼 마음 한편이 축축해졌다. 슬픔은 체력이 없어도 가능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상태를 보고 가자 엄마는 다시 보호자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다시 잠에 들었다. 이불도 아닌 얇은 시트를 덮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는 가만히 누워 엄마의 숨소리를 들었다. 숨소리에 긴장감이 섞여있었다. 놀랐겠지. 놀라도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엄마의 피곤함이 슬펐다. 잠을 자야 내일이 오는 게 아니라 잠을 자야 내일도 살 수 있는 삶이 있다. 


 눈을 뜨니 엄마가 없다. 출근을 한 것이다. 밤에 실수를 한 덕분인 걸까. 잠을 자고 나니 몸이 개운했다. 열도 내렸다. 저번 배양 검사에서 히크만 카테터에도 균이 발견되어 제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는데 새로 한 배양 검사에서는 균이 발견되지 않아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제거하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았다. 다만 히크만 카테터를 다시 시술 생각에 피곤했는데 다행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좋은 컨디션을 더욱 좋게 보이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일 저녁에 보면서도 반가워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안 죽었으면 된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삶은 과정이 중요하다지만 병원에서 환자는 살기만 하면 장땡 아니냐고 했다. 엄마는 내게 먹고 싶은 것은 없냐고 물었다. 나는 덜 고생했는지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웃는 건지 흐느끼는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끊어진 휴대폰을 보며 노란 얼룩을 생각했다. 아무리 추해진다 해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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