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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09. 2021

혈액암 병실에서 치킨과 피자 먹기

 보호자 중 한 분이 슬며시 병실 문을 닫았다. 동시에 다른 보호자들은 빠르게 치킨과 피자 그리고 오븐 스파게티를 꺼냈다.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 앉아 자신의 몫이 오기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젊은 환자들만 6인실을 차지했다. 최연소가 중학생이었고 최고령이 스물아홉 살이었다. 우리는 매일 좋아하는 가수, 게임, 음식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지만 병원에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상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다양한 취향을 가졌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같았다. 피자와 치킨.  


 우리는 이어달리기처럼 바턴을 주고받는 대신 중환을 이어 앓았다. 우리는 서로가 괜찮아지길 진심으로 빌었다. 항상 서로의 컨디션을 살폈다. 병실에서 피자와 치킨을 먹을 날을 기다렸다. 쉽지 않았다. 병실에서 여섯 명의 취향이 같은 것보다 모두가 아프지 않은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마지막 바턴을 이어받은 사람은 나였다. 정말 죽을 뻔했다. 교수님이 순회를 돌면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침대에 엎드렸다. 고열도 고열인데 항생제와 항진균제 때문에 몸이 축나서 죽을 것 같았다. 교수님은 냉정했다. 약을 제발 줄여달라는 내 청을 듣고도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하셨다.    

 

 겨우 살았다. 열이 잡혔다. 호중구 수치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식사로 죽이 나왔다. 하지만 호중구 수치가 오르는 데 한 달 가까이 걸렸다. 수치가 천을 조금 넘긴 날혈액검사표를 쥐고 우리는 눈빛을 교환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각자의 보호자를 애달픈 눈으로 쳐다봤다. 우리보다 보호자들은 보호자끼리 더 돈독했다. 보호자들은 서로 의견을 나눴다. 엄마는 대화를 하다 인상을 쓰며 나를 봤다. 나는 검지를 들어 올리며 한 번 만이라고 말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죽다 살아난 사람 소원도 한 번 들어달라고 말했다. 엄마는 내 고집을 이길 수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었다. 둥글게 앉아서 머리를 맞대고 먹으면 좋았겠지만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우리는 분명 환자였지만 치킨과 피자를 먹는 순간은 아프지 않았다. 정말이었다. 나도 며칠 전만 해도 이대로 죽을 것 같았는데 그게 먼 과거같이 느껴졌다. 몰래 먹는 음식은 정말 맛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퇴원하면 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축구, 드라이브, 식도락 여행. 다양했다. 일단 살기나 하자고 너희 죽으면 나한테 죽는다고 큰형이 말했다. 제일 예후도 안 좋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우스웠다. 보호자 몇이 눈물을 훔쳤다. 죽을 것 같으면 죽겠다고 농담도 하지 않는다며 큰형은 당황해했다. 우리는 우리끼리 할 수 있는 농담이라며 웃었다. 보호자들도 함께 웃었다 우리는 당연히 살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살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앓느라 위장이 약해진 나는 혼자만 설사로 고생했다. 그래도 좋았다. 함께 고생해놓고는 놀리는 동지들이 있어서. 병실이 병실 같지 않아서. 아픈 것이 아픈 것 같지 않아서. 아무도 죽을 것 같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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