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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10. 2021

버티다 보면 해 뜰 날도 있겠지

 병원에 오기 전에는 침대에서 자본 적이 손에 꼽았다. 바닥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장도 아닌 사람의 눈높이 맞춘 위치에 누여 있는 것은 신기한 체험이었다.      


 주변에서 섬망을 겪은 환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저승사자들이 자신을 둘러싼 채 내려 보고 있다는 사람도 있었고 가시 달린 천장이 내려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드물었지만 자신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을 때만 기억했다. 그렇게 혈관 주사를 뽑아 피를 흩뿌리고, 일어나겠다며 주먹질하던 일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는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때만 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섬망은 일종의 패닉과도 닮았다. 패닉에 걸리면 주저앉거나 어떻게든 현장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기 마련이다. 섬망에 걸린 사람들은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안달이었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우리가 아닌 것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었다.     


 혼은 하늘로 간다고 하고 백은 땅으로 간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우리는 땅이라고 하기 에는 높았고 하늘이라고 하기 에는 낮았다. 그렇다고 인간이라고 하기 에는 인간의 허리 위치에 누워만 있었다. 우리는 반만 인간이었다. 걸핏하면 어디로든 끌려갈 것 같았다. 섬망은 떨어지거나 끌려가지 않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안간힘이 실제화한 것이 아닐까 싶어 졌다.     


 언젠가 간호사 선생님에게 죽음의 5단계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는 어떤 단계에 돌입한 것 같으냐 물었다. 그녀는 내게 너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냥 신나 보인다고만 말했다. 맞았다. 신났다. 살면서 폐쇄병동을 몇이나 갈 수 있을까. 나는 정답이라고 웃었다. 나는 다시 질문했다. 죽음의 5단계인 수용에 오면 사람은 죽게 되냐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꼭 5단계가 순서대로 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뛰어넘기도 하고 역으로 오기도 한다고 했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밤만 되면 혈관주사를 뽑아 커튼에 핏방울 무늬를 만드는 옆자리 환자는 어떤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저러는 걸까.      


 장갑을 낀 채 항암제를 히크만 카테터에 연결해주는 간호사를 본다. 항암제는 발암 물질이기도 하다. 독을 독으로 잡는다고 했던가. 항암 사이클이 비슷해 외래 때 옆 환자를 본 적이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채 중절모를 쓰고 있던 그는 내가 본 사람 중 최고로 진중한 노신사였다. 그가 피를 뿌리며 독기를 품는 이유는 항암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무너지는 마음을 무너진 마음으로 해독하는 거겠지. 항암제를 맞으며 난리 치는 그의 실루엣을 그림자 연극을 보는 기분으로 본다. 뭐든 좋으니 당신도 나도 버티는 게 사는 길이다. 마음을 다진다.  

   

 그의 절규가 살기 위한 의지가 아니라 소음으로 들린다. 이제 내게 집중하기도 벅찬 시간이다. 반은 사람으로 반은 유령으로 누워 항암을 맞으면 꼭 섬망이 아니어도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병동은 11층에 있다. 가라앉다 보면 병원 로비가 나올 것이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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