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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16. 2021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지막 항암을 기다리던 날 중 하루였다. 밤에 족발을 시켰다. 나이트 근무를 하실 간호사 선생님들과 며칠 전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선생님들의 근무 교대보다 족발이 먼저 왔다. 나는 혼자 미션 임파서블을 찍는 마음으로 족발과 막국수가 들어 있는 봉지를 들고 병동 밖을 배회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혹시 몰랐다. 문제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기기 마련이니,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했다.


 항상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겨울잠을 준비하는 곰처럼 먹어댔다. 패스트푸드부터 슬로 푸드까지 가리는 음식도 없었다. 항암을 시작하면 심한 오심으로 인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고안한 방법이었는데 효과가 좋았다. 감염이 없던 것이 아니었지만 대부분 무난하게 넘겼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진짜 마지막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은 특별하다. 마지막을 마지막이라 믿기 위해, 누나 동생 할 정도로 친해진 간호사 선생님들과 송별회를 하고 싶었다. 물론 족발을 먹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긴 했다. 치료가 잘 되고 하면 좋겠지만 혹시 모를 불상사를 염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곳에서 환자라는 존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였다.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들은 야식 약속을 허락해주었는지 모르겠다.  


 근무 교대가 끝나고 밤이 깊어지자 나는 간호사 휴게실에 족발을 들고 들어갔다.

 휴게실에 족발이 한 상 가득 차려지자 우리는 웃었다. 암병동에서 간호사들과 함께 야식 먹는 환자는 너 밖에 없을 거야.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내 병원생활을 정의해주는 말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유쾌했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해도 보지 못한다는 슬픔보다 함께 했던 즐거움이 더 컸다.

 항상 담담해 보여 익숙하구나 싶었는데 간호사도 사람이었다. 죽은 사람들을 추억할 때 선생님들이 보인 표정은 내가 다 눈물이 났다. 새삼스럽지만 진심으로 함께 병과 싸워주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최근에 위급 환자가 많아서 밥 굶는 것을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치료도 일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사람을 살리겠다고 자신 몸을 혹사시킨다는 게 이상했다.

 다들 오래 일을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앞으로의 계획을 들으니 신기했다. 내가 지금 환자라고 해서 영원히 환자가 아닐 것처럼 간호사 선생님도 영원히 간호사만 고집할 리가 없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족발도 맛있지만 막국수도 맛있다. 잘 시켰다.  병원 밖이 아니라 병원 안에서 치료 중에 간호사 선생님들과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던 것도 좋았다. 음식도 대화도 마지막 항암을 버티는 좋은 양분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족발 덕분에 마지막 항암의 이전 항암보다 수월하게 마무리했다. 막국수 덕분에 재발도 없이 여태 잘 지내오고 있다. 그 날의 대화들 덕분에 병에 걸린 나를 마주하기가 두렵지 않다. 대단한 포만감이다.


 이제 병동에는 환자도 의료진도 내가 아는 사람은 나를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날을 이야기를 해도 해를 입을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에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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