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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an 22. 2021

밤을 기다렸다

 6인실에 있을 때면 밤이 좋았다. 누런색의 커튼 속에서 각자 개인 전등을 켜놓고 각자의 밤을 시작하는 게 보기 좋았다. 그림자극을 보는 것 같았다. 섬망이 온 노인의 난리도 그 난리 통 속에서도 딸에게 화상통화를 하며 웃는 중년 남성의 모습도 별세계 같아 좋았다. 밤이 깊어지면 노인도 주사를 뽑아 피 칠갑했던 것도 잊고 잠자리에 들 테고 중년의 남성도 자신의 내일과 딸아이의 내일이 함께하는 날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터였다. 그렇게 극이 끝나는 것도 좋았다. 보호자들이 보호자 침대에 자리를 잡고 온전치는 못하겠지만 자신을 마주하는 밤이 좋았다. 낮은 현실뿐이었다. 우리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켰다. 앓아야 했고 앓는 소리를 견뎌야 했다. 보호자는 그걸 지켜보며 불안해야 했다. 환자의 움직임 하나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바늘처럼 날카로워져 갔다. 그 바늘은 간호사를 향한 경우가 많았다. 낮은 노골적이었고 비열했다. 밤은 그러지 않았다. 밤은 고요했다. 간혹 고함이나 비명이 들렸지만 이내 어둠에 사라져 갔다. 밤은 알고 있는 것들도 온전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별일이 아닌 일들이 별일 같아 보여서 좋았다. 남 일 같아졌다. 그래서 좋았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피를 뽑았고 체중을 쟀으며 조식을 먹었다. 병동 밖 층을 돌아다니며 오후에 시작할 항암을 걱정하는 게 평소와 조금 다른 날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시신 백이 올려진 침대가 병동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

 솔의 눈 아저씨였다. 갈아 만든 배 음료와 솔의 눈을 물물 교환하며 친해진 아저씨였다. 항암을 하면 입덧처럼 먹을 수 있는 게 줄었다. 항암은 사람을 말려 죽이는 독이었다. 항암 중에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내 축복은 갈아 만든 배였지. 개똥도 약으로 쓸려면 보이지 않는다고 했지. 병원에서도 병원 근처에서도 갈아 만든 배를 팔지 않았다. 엄마는 퇴근 후 항상 갈아 만든 배를 사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런 음료를 물물 교환했던 아저씨였다. 그만큼 아저씨는 인상이 좋았다. 증세가 나빠져도 아저씨는 나를 반겨주었다. 표정이라고는 고통만 표현하는 수단이라 생각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런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아저씨는 밤을 지나고 새벽을 지나서 아침에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키던 가족들이 새벽까지 이겨내신 모습에 안심하고 아침을 먹으러 간 와중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멀어지는 침대를 보면서 죽음은 슬픈 것보다 고생한 결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고생의 결과는 무엇이 될까. 애도가 아니라 내 싸움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비참했다. 수고하셨다고 중얼거리며 이제는 보이지 않는 침대를 향해 인사를 했다. 두 손 꼭 잡은 채 따라가는 딸들이 선명해 잔혹했다.

 울지도 못해서 침대에 와 밤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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