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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13. 2021

내 안에는 개가 있다.

 봄이었다. 둘레 길을 걷다 꽃을 보고 있었다. 넌 작년에도 이곳에 있었니. 꽃은 말이 없었다. 꽃이라도 대화를 하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날이었다. 모두가 바쁜 시간이었다. 걷기를 포기하고 벤치에 앉아 움직이는 온갖 것들을 봤다. 작은 벌레부터 구름까지 무엇도 가만히 살아 있는 것 없었다.     


 분주한 세계는 졸음을 부른다. 눈을 감고 꾸벅거리는 도중에 전화가 왔다. 아저씨였다.

 저번 외래 때 병동에서 아저씨를 잠시 만났었다. 세 번째 재발이라고 했다. 이제는 그냥 편하게 죽고 싶어. 아저씨는 실없는 소리를 하길 좋아했다. 실이 끊어진 소리를 하길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 같이 맥없는 소리에 나는 고민도 없이 말했다. 개소리하지 마세요 아저씨. 아저씨는 웃었다. 우리는 어설픈 위로를 주고받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을 보냈다. 죽음은 도피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남을 사람은 죄가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아산병원 이식센터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는 전화였다. 잘 생각했다는 내 말에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며 자가이식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환자들 사이에서 자가이식은 아산병원이 유명했다. 의료진들은 이제는 상향 평준화되어서 의미가 없다고 말했지만 0.01%라도 아니 그냥 미신이라도 우리는 기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하며 컴퓨터를 켜서 알려드린다고 말하고 왔던 길로 돌아 집으로 향했다. 누워 있을 아저씨 몫까지 나는 분주하게 걸었다. 가만히 살아 있는 것은 없었다.     


 아산병원 이식센터 연락처와 정보를 검색해 아저씨에게 문자로 보냈다. 답변이 없었다. 노력이 무시당한 것 같아 심통이 났다. 그래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누웠다. 방안에 형광등을 보는 게 새삼 낯설다. 눈을 감으면 병동 내 온갖 잡다한 소리들이 들릴 것 같다. 다시 눈을 뜨면 옆 침대에서 놀릴 준비를 마친 아저씨와 눈을 마주칠 것 같다. 얼마나 잤을까. 전화가 왔다. 친한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울음 섞인 소리였다. 아저씨가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얼마 못 버티실 것 같다는 전화였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개 짖는 소리가 머리에 가득해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개 짖는 소리가 다 내 목소리였다.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눈을 감으면 더 빨리 달리는 기분이 들었지. 괜히 눈을 감았다. 이제는 개는 짖지 않고 내 마음을 물어뜯고 있었다.


 중환자실은 상시 면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19시부터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18시 50분이었다. 중환자실 앞에서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처음 본 아저씨의 아들도 안아주었다. 환자보다 보호자를 대하는 일은 어려웠다. 택시에서 날 괴롭히던 개가 밖으로 나올 것 같아 두려웠다. 입술을 깨물고는 아들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저녁 식사 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감염되었다고 했다.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바로 중환자실로 왔다고 했다. 하루를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입술도 모자라 혀도 깨물고 싶었다. 어떤 말을 해도 개 짖는 소리가 될 것 같았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본 아저씨는 온갖 것들을 달고 있었다.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가만히 살아 있는 것은 없다. 아저씨는 살아 있었다. 온 힘으로 살아 있었다. 감염으로 인해 검어진 손을 잡았다. 의식이 없을 거라던 아저씨는 내 손을 힘껏 잡아줬다. 위생장갑 너머에서 아저씨의 손이 차가웠다. 아저씨 장난 그만하고 일어나요. 아저씨는 웃지 않았다. 아귀힘이 점점 멀어져 갔다. 아귀힘에서 나는 아저씨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봤다. 그 사이 아저씨가 다니던 교회 사람들인지 들어와 기도를 시작했다. 그간 고생 많았다는 식으로 천국에 갈 거라는 내용의 기도였다. 너희들이 뭘 알아. 너희들이 뭘 아냐고 화를 내고 싶었다. 천국이 아니라 아저씨는 여기에 있고 싶어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나와 벤치에 멍하니 앉았다. 온갖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발을 동동 구르며 괴로워하는 사람부터 보호자를 안아주는 병문객들까지 무엇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모두 분주히 살아 있었다. 아저씨가 제일 힘껏 살아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던데, 나 때문에 아저씨가 편하게 가질 못하시는 것 같았다. 큰 소리로 짖고 싶었다. 개는 여기 있다고. 개소리는 내가 했다고. 개는 여기 있으니까 편해지라고. 편하라고.

 아저씨 아들이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병든 개처럼 가냘프게 울었다. 아저씨가 들으면 진짜 가버릴까 봐.


 결국 아저씨는 새벽에 가셨다. 나는 그제야 큰소리로 울 수 있었다. 여기 개가 있다고. 잘 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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