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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an 14. 2021

우리 중 하나가 길을 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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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동 밖 복도를 거닐고 있을 때였다. 사방에서 뜀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의사들이 우리 병동으로 뛰어 들어갔다. 배선실에서 조리하거나 수다를 떨던 보호자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뛰쳐 들어갔다. 병동 밖에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들어갈 수 없었다. 병동 자동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성였다.      


 어두운 골목도 밝은 골목도 따지지 않고 탐험하기 좋아했다. 골목마다 다른 냄새가 났다. 어떤 골목은 소다를 많이 넣은 달고나 냄새가 났고 어떤 골목은 갓 지은 밥 냄새가 나기도 했다. 집에서 느낄 수 없는 것들이라 묘한 안정감을 줬었다. 막다른 골목의 형태를 띤 병동은 살 냄새가 났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하염없이 병동 복도를 걸었다. 가만히 걸어 다녀도 누군가 함께하는 기분이었다. 귀신인지 살겠다는 우리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의사들이 들어간 병동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무엇도 예상할 수 없었다. 목적지에 가려면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골목을 지나야 하는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몰랐다. 심해처럼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울고 싶어 졌다.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조리하다 헐레벌떡 들어갔던 보호자들이 나왔다. 아무 말 없이 마저 환자를 위한 음식을 다시 조리했다.      


 나는 안다. 병동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안다. 우리 중 하나가 삶에서 길을 잃어, 의료진들이 길 잃은 이의 심장에 지도를 각인시켜주고 있다.     


 병동 문이 열리고 다리가 풀려 다른 보호자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여자와 뛰어나와 계단에서 절규하는 남자를 봤다. 잠시였지만 2인실을 같이 썼던 중학생 아이의 부모였다. 6인실에 자리가 나 짐을 쌀 때 나이 많은 어른과 같은 병실을 쓰면 행동에 제한이 많다며 아쉬워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부축받아 화장실에 갔다. 철문에 주먹질하면서 절규를 삼키는 아이의 아버지를 보며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괴로웠다. 쾅, 쾅, 쾅 저 소리를 듣고 길 잃은 아이가 돌아오기를 빌었다. 다시 병동 문이 열리고 아이 아빠는 불려 갔다.     


 의사들이 나왔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며 웃으며 갈 길 가는 것을 봤다. 조금 그들이 미워졌다. 다른 차원에 사는 것처럼 보였다.

 침대가 나왔다. 시신이 아니었다. 살렸구나. 살려서 웃었구나. 미운 마음이 사라졌다. 중환자실로 가는 것 같았다. 따라가는 아이 아빠는 아이에게 괜찮을 거란 말을 계속해주었다. 아이 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보호자들은 역할을 나눠 아이 엄마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부축도 해주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이가 안타깝지 않았다. 아이가 고생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고생해야 하는 걸까. 혼자 되물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모든 연대는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만 있었다. 병동은 금방 살 냄새로 가득했다. 간호사는 간호사대로 레지던트는 레지던트대로 분주하고 보호자들은 보호자대로 배선실을 오가며 분주했다. 다음 날 배선실에서 중환자실에 아이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호자는 혼잣말로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며 음식을 들고 갔다. 쓸쓸해져 침대에 누웠다. 이 침대에 몇이나 누웠던 걸까. 기껏 살아서, 산 사람이 되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연대 누워있는 것뿐이라니. 변함없는 살 냄새가 천연덕스러운 것 같아 미워졌다. 자꾸만 미워지는 게 많아 걱정이라 생각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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