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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11. 2021

원망만 하고 싶어 괴롭다.

 항암제를 투약하면 면역력은 제로가 된다. 면역력이 약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면역력을 담당하는 세포인 호중구의 수치가 제로가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백혈병을 보고 백혈구가 미쳐서 몸 안에서 날뛰는 병이라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백혈구가 몸을 지키는 세포가 아니라 몸을 공격하는 세포로 돌변하는 병이니까. 항암제는 내 안에서 만들어진 배신자를 죽이는 약이었다.      


 면역력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씻는 것부터 먹는 것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칫솔은 매번 보호자가 젖병에 담아 전자레인지로 소독하고 나서야 쓸 수 있었고, 과일은 멸균 처리된 통조림 과일밖에 먹을 수 없었다. 구내염이라도 생기면 오백 원 정도의 크기까지 금방 커서 잘 낫지도 않았다. 아무리 주의한다고 해도 항암이 끝나고 호중구* 수치가 오르는 동안 한 번이라도 감염이 되지 않고 넘어간 적이 없었다. 항생제나 항진균제로 열을 잡지 못하면 답이 없었다. 병동에서는 백혈병 자체보다 면역력이 없을 때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을 더 무서워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많이 죽기도 했고. 조심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죽기 무엇보다 쉬웠다. 죽지 않기 위해선 우리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도 세균도 번거롭게 만들 정도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면역력이 없어 무방비가 되었다는 것은 잊었던 몸 안에 문제들도 터지기 쉽다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그나마 몇 년 전 수술했던 치루가 재발했지만 민재형은 과거에 수술했던 심장이 말썽이었다. 죽음은 외부에서만 오지 않았다. 외부에서 오는 죽음도 모두 막지 못해 고열에 시달리는데 내부에서 오는 죽음을 우리가 어찌할 수 있을까. 매일 천지신명에게 비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고열 때문에 일주일을 누워 있었다. 아침에 받은 혈액 검사 결과표에는 아직도 호중구 수치가 제로였다. 몸이 덜 회복했지만 열이 잡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앓아눕기 전에 민재 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장이 약한 상황이라 제대로 항암제를 쓰지 않은 통에 이식에 실패했고 뇌까지 전이된 상태라고 했었다. 나는 링거대를 끄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긴 채 민재형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혹시나 침대에 다른 환자가 누워 있을까 두려움에 떨었다.      


 사방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같은 병실에 있을 때 커튼은 답답하다며 참 싫어하던 형이었다. 커튼을 밀치니 형이 누워 있었다. 형수님 눈이 많이 부어 있었다. 나는 앓느라 못 놀러 왔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형은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농담처럼 의식의 반이 날아가서 의식의 반을 붙잡고 버티고 있다고 했다. 진담을 왜 그렇게 농담처럼 말하냐고 타박했다. 형은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며 몸을 일으켰다.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형수님은 괜찮다고 그냥 그대로 누면 된다고 말했지만 형은 화장실을 가야 한다며 고집을 피웠다. 형수님은 간호사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 앞이라 그랬던 걸까. 섬망이었던 걸까. 알 수 없었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커튼 밖으로 밀려 나와 내 병실로 내 침대로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침대에 눕자 형이 오늘 넘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생각이라며 내일은 나도 형도 조금 나아진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자꾸 불안했다. 이대로 잠을 자면 형을 다신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걱정도 어느 정도의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다.


 서늘한 느낌에 깼다. 체중 검사와 채혈을 하고 바로 병실을 나섰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왜 자꾸 불안한 걸까. 천천히 링거대를 밀며 걸었다. 어제처럼 링거대에 몸을 맡기지 않아도 되었다. 하루 사이에 체력이 많이 회복했다. 나도 형도 좋아진 상태로 볼 수 있을 거란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나아졌다. 기분이 나아진 상태로 형이 있는 병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돌아섰다. 들어가 보지 않아도 볼 수 있었다. 병실 문 바로 옆이 형 자리였는데 형이 없었다. 흔적도 없었다. 애초에 아무도 없던 것처럼 깔끔했다. 나는 울지도 않고 내 병실로 내 침대로 향했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병실에서 형에 대한 흔적은 내 안에만 있는 것 같아 하나하나 곱씹으며 걸어야 했다. 입으로는 백혈구 개새끼들 개새끼들 욕하며.     


 백혈구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골수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중요하지 않았다. 개새끼들. 개새끼들. 살려내라. 개새끼들. 너희가 일만 제대로 했으면 살았을 텐데. 개새끼들.     


 호중구 수치가 오르자 구내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라앉는다. 전신 마취 이야기가 나왔던 치루 수술도 호중구 수치가 오르자 부분 마취로 바뀌었다. 면역력이 없었을 땐 고통이자 부담이었던 것들이 면역력이 오르면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민재 형 자리에 새로 깔린 시트처럼 기억으로만 남았다. 그간 고통이 없던 일로 만들려고 아등바등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뭐가 마음이 안 들었길래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는 걸까. 백혈구에게 골수에게 잠시나마 정상이 된 기념으로 물어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녀석들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그런 짓거리를 한 녀석들은 모두 죽었다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지금은 우리가 너를 지키고 있지 않느냐고 거만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킨다. 우리는 누굴 원망해야 하는 걸까. 내 원수조차도 모르쇠로 일관하는데. 좋아하는 사람을 죽인 원망해야 할 대상도 그 사람이 죽으면 같이 죽어버리는데. 



위 글에 언급된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 호중구(또는 중성구)는 골수 내의 조혈 줄기 세포에 의해 형성되며, 선척 면역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표적인 과립구 세포이다. 호중구는 대부분 포유류의 백혈구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55~70%)을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중구 [Neutrophil] (분자·세포생물학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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