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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09. 2021

우리는 각자 아프지만 동료입니다

 친한 간호사 선생님을 통해, 결국 영수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형은 두 번째 암이었다. 고환암 투병이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백혈병에 걸렸다고 했다. 형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니다. 배선실에서 들었다. 보호자들은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누가 봐도 병원 생활이 처음이 아닌 것 같긴 했다. 처음 병실에 들어와 어머니와 짐을 푸는 형은 담담했다. 꺼내 놓은 물건이 원래 그 곳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어머니는 병실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지만 형은 그러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헤드셋을 낀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같은 병실을 쓰는 동안에 형이 앓는 소리 내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다. 지금은 눈물처럼 앓는 소리도 마를 수 있겠다 싶지만, 당시에 항암을 하면서도 음악을 듣는 담담한 모습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병동에 슈퍼 바이러스가 돌았다. 감염 된 환자는 격리 되었다. 형도 감염되었다. 격리되어야 했다. 내 엄마처럼 형의 어머니도 저녁 늦게 오셨다. 고열인 상태로 형은 짐을 쌌다. 짐을 싸는 줄도 몰랐다. 원래 그곳에 짐이 없던 것처럼 조용히 정리해 떠났다.     


 형과 대화를 해본 적은 없었다. 형이 형이라는 것도 침대 앞에 환자 정보를 보고 알았다. 나는 형을 보며 재발을 하면 치료를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담담함과 능숙함은 좋았지만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 멋져 보였던 것 같다. 만약 내게 그런 힘이 있다고 해도 나는 그걸 병원에서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형의 부고 소식을 듣고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는 형이 1인실로 옮겨졌을 때 고열에 형의 어머니 머리채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고 했다. 온갖 일로 형은 형의 어머니를 많이 괴롭혔다고 했다. 배선실에서 다른 보호자들이 형의 어머니를 안아주며 위로해줬었다고 했다.      


 나는 내가 앓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에 배선실에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형은 차분한 사람이었고 어머님은 저녁에만 뵈었지만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병동은, 병실은 그렇게 넓지도 않은 공간이었다. 평행 세계인걸까. 알 수 없었다.      


 진짜 평행 세계라면 어딘가 암에 걸리지 않은, 암에 걸려도 항암에 몇 번이나 실패하지 않는, 슈퍼 바이러스란 게 존재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을 형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 세계 죽은 형은 변함없이 죽은 상태다.

 거기에 있는 사람도 형이고 여기에 죽은 사람도 형이다.      


 슬펐다. 왜 우리는 그렇게 담담한 척을 위해 노력했을까. 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터트렸을까.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울 수 없었을까. 아프면서까지 무엇을 연기하려고 한 걸까. 나는 사실 형이 자포자기해서 담담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자포자기한사람이 병원에 입원 했을 리 없었다. 난 형의 평면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보호자들이 어머님을 안아주며 위로 했듯이 나도 형을 떠올린다. 고생했다고 다음에는 대화도 해보자고. 다 동지라고.      


 영수 형의 명복을 빕니다.     





위 글에 언급 된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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