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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08. 2021

쉽게 판단되는 사람은 없다


 그는 병동에 두 개 있던 6인실 중 한 곳의 터줏대감이었다.

 그는 10년 가까이 병실 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첫 만남에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죽음을 봐왔는지 내게 물었다.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2인실에서 그가 있는 6인실로 옮겼을 때 그는 나에 대한 싫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특별히 말을 하지 않고 헛기침과 시선으로 압박해왔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에 6인실에 계시던 어른들을 만나기 위해 병실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안면은 트여서 덜 어색할 줄 알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명백하게 나를 싫어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을 수도 없이 봤다고 했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수도 없이 봤다고 했다.     


 나보고 어쩌라는 것일까. 닥치라는 이야기를 풀어서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따분한 병원 생활에서 활력소를 얻기 위해 내게 저주를 거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티꺼웠다. 죽은 사람들의 목숨을 마치 적장의 목을 몇 개나 베었는지 자랑하는 장수의 태도로 말하니 역겨울 뿐이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너스레를 떨어도 그의 냉담한 표정은 좋아지질 않았다. 나는 그와 대화를 하는 것을 결국 포기했었다.     


 병실에 있을 때 나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와 부딪히는 것보다 회복이 우선이었다. 대신 그를 관찰했다. 오랜 병원 생활이 그에게 남긴 것은 통증과 자극뿐인 것 같았다. 화장실 옆자리였던 그의 자리를 지날 때마다 노트북 화면에는 그로테스크한 게임이나 영화가 켜져 있었다. 그가 수술한 부위를 친해진 환자나 보호자에게 보낸 것을 받은 당사자에게 듣기도 했었다. 애정표현 조차도 통증을 전시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 그건 조금 안쓰러웠다.     


 점점 그와 같은 병실을 쓰니 알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싫다기보다 불편한 것이었다. 내가 자신이 떠나보낸 감정을 여기저기 흩뿌리고 다녔으니 괴로웠을 것이다. 그가 말한 죽음은 자신의 감정을 가지고 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호명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그가 많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허구한 날 간호실 벨을 눌렀다. 주로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눌렀다. 그가 하루 투여받는 마약의 양은 일반인에겐 치사량에 가깝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는 끄떡없어 보였다. 가끔은 노트북 하던 자세 그대로 잠들긴 했지만.   


  그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큰소리를 냈다. 간호사에게도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에게 병동의 시간은 너무 길었고 만남은 짧았다. 우리와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가 티껍거나 역겹지 않다. 그냥 다를 게 없었다. 아팠을 뿐이고 아픈 것에 최선을 다 했을 뿐인 사람이었다. 그러다 다른 시간을 살게 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에게 더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퇴원하는 날 나는 그에게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냉담했으니까.

 나는 당신보다 죽음을 많이 보지 못했다고. 내가 죽지 않아서 나 같은 죽음도 보지 못했다고. 그래도 모두 부르고 불러서 잊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화만 내지 말고 당신의 이야기나 좀 들어보자고. 그러고 싶었다.

 얼마 후 병원에 가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병동은 공사 중이었다. 병동 리모델링으로 인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영원히 6인실 화장실 옆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그가 다른 병원으로 가다니 이상했다. 그를 찾아가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시작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나중에 친한 간호사에게서 그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가끔 생각나던 그가 죽었다고 한다. 

 그의 질문에 대답을 못해서 후회가 되었다.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서 후회하는게 좋다는 말이 맞았다.


 응급상황이 와 CPR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죽음 원인은 아니라고 했다.


 CPR을 해서 살아난 그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났다 

 기적이었다. 말이 안 되는 사례였다.

 기적은 기적을 낳는다고 했던가.

 이십 대를 침대에서만 보낸 그가

 나중에는 걷기까지 했다.

 퇴원까지 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죽었다고 한다. 

 몇 번의 외래진료를 받고

 그렇게 듣고 싶어 했던

 더 좋아졌다는 소리를 몇 번 더 듣고

 외래진료를 보고 돌아가는 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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