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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24. 2021

우린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비극이다.

 침대에 누워 따분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카톡이 왔다. 3분 카레 먹을래? 옆 병실에서 투병 중인 혜수 누나였다. 나는 좋다고 대답했다. 다시 카톡이 왔다. 병동 복도에 숨겨둘 테니 찾아봐. 


 병실 문을 나서니 막막했다. 복도에 3분 카레를 어떻게 숨겼다는 거지. 아무리 봐도 마땅히 숨길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억지로 숨긴다면 소화기 주변이라던가 의료 카트 주변일 것 같았는데 그곳에도 없었다. 간호사실에 자꾸 눈길이 갔다. 하지만 간호사실은 포기했다. 정신없이 바빠 보였는데 내가 거기다가 혜수 누나가 간호사실에 카레 숨겼냐고 물으면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것 같았다.


 누나에게 도저히 못 찾겠다고 카톡을 보냈다. 답장이 오지 않았다. 누나가 있는 병실 앞을 서성거렸다. 카톡을 다시 한번 보냈다. 답장이 오지 않았다. 방송 소리가 들렸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갑자기 의사들이 뛰어왔다. 누나가 있는 병실로 의료진들이 뛰어 들어갔다. 나는 덩달아 놀라 링거대를 들고는 뛰었다. 뛰어서 내 병실로 숨었다. 3분 카레는 무슨, 누나가 카톡을 읽지 않는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상황이 종료되고 의사들이 기분 좋게 병동을 나갔다. 누군가 심폐소생술을 받아야 했던 것 같다. 의사들 표정 보니 고비를 잘 넘긴 것 같았다. 잘 된 일이었다. 잘 된 일이라 생각하니 괜히 누가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간호사실 주변을 배회하며 간호사 선생님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귀 기울였다. 고비를 잘 넘겼다고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곧 환자 이름도 나왔다. 혜수 누나였다. 혜수 누나가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같은 병동에 있었지만 나는 누나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더라. 병원에 있으면서 네이트 판에 투병기를 연재했다. 사람들에게 나는 나름 재밌게 잘 투병 중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 미니홈피에 카카오톡 아이디를 공개해놨었는데 누나가 그것을 보고 먼저 연락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는 같은 병동에 있었지만 만나지는 않았다. 철저한 사이버 친구였다. 서로 표정을 공유하지 않고 공간만 공유하는 일은 즐거웠다. 


 아침마다 카톡을 확인했다. 다음날도 모레에도 답장은 없었다. 글피가 되어서야 답장이 왔다. 3분 카레 게시판 뒤에 숨겨놨어 누나는 그간 왜 답장을 못 보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정말 게시판 뒤에 카레가 있었다. 어떻게 여기에 숨긴 걸까.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숨긴 것을 물어보면 왠지 또 답장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투정 어린 카톡을 보냈다. 나는 매운맛이 좋은데 순한 맛이네 아쉽다. 누나는 ㅋㅋㅋ를 연신 보냈다. 처음으로 누나 표정이 궁금해졌다. 아픈 표정으로 휴대폰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웃는 표정으로 눌렀으면 좋겠다 기도하며. 


위 글에 언급된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또한 위 글과 연관된 글 링크도 첨부합니다.

https://brunch.co.kr/@flqj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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