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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Dec 13. 2018

무소식은 무소식이야

어느날의 편지

 안녕? 누나 그동안 비가 엄청 내리더니 이제 내리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 죽지 않았네, 다행이다 ‘가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 첫 인사가 되었는데, 누나에겐 그런 인사를 할 수 없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니 누나가 생각났어. 병원에 있을 때 누나가 들고 다니던 사이다 속 청량하게 요동치던 물방울과 빗방울이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묘하게 닮은 것 같았거든. 억지 부린다며 코웃음치고 있을 누나 모습이 상상 가네. 그래도 애교로 봐줬으면 좋겠다.    


 난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 내일로를 다녀왔고, 응급실도 다녀왔어. 내일로는 내게 여러 의미가 있다. 공고 1차가 끝나고도 내일로를 갔었어. 남들이 보기엔 미친것 같아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죽을 것 같았거든. 죽기 전에 뭔가 여행을 하고 싶었거든. 누구든 만나고 싶었거든. 몇 번이나 헛구역질하며 돌아다녔지만 재밌던 기억이었어. 뭔가 온몸으로 유서를 쓰던 것 같았달까? 이번에 간 내일로는 그때처럼 절박하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 고리타분했어. 어차피 고리타분할 거라면 여러 곳이 아니라 한 곳만 진득하게 여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니까.

 응급실은 요로 결석 때문에 다녀왔어. 투병이 끝나고 나니 평생 겪어본 적도 없는 요로 결석이 말썽이더라고. 처음 요로 결석이 왔을 땐 너무 아파서 맹장이 터진 줄 알았다니까. 정말 아프더라. 모르핀을 맞는데도 통증이 잘 줄어들지 않아서 죽을 맛이었다니까. 어떤 사람들은 혈뇨만 보고 통증은 별로 없다고 하는데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진짜 항암 때문에 기력이 다 쇠해서 밤에 설사를 지려도 수습하겠다고 움직이던 나인데, 요로 결석 때문에 응급실 바닥에 나뒹굴 줄 누가 알았을까.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였더라. 누나가 자가 이식 결과가 좋은 줄 알았는데 몸이 다시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카톡이었던가. 이후 얼마나 연락했는데, 연락 안 받더라.

 문득 병동 복도에서 첩보 영화를 찍었던 기억이 난다. 카톡으로 카레 이야기를 하다 누나가 3분 카레 남는 것 있다고 복도에 숨겨놓겠다고 했던 일. 얼마나 구석구석 다 찾아봤는지 알려나. 그 때문이었을까? 누나가 다시 병원을 입원하러 간다는 말이 뭔가 첩보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는 말 같기도 했어.

 하지만 우리는 킬러도 첩자도 뭐도 아니라 환자였다. 당연히 누나가 연락할 수 없던 것을 알지만 미웠어. 연락이 없어서 대충 예상도 했고. 그래도 누나 부고 소식을 구글 검색으로 알게 된 건 너무 끔찍하더라. 왜 검색했을까. 왜 연락이 끊긴 환자들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하는 버릇이 생긴 걸까. 혹시나 상처 입을 보호자들의 배려를 나는 왜 이렇게 무참히 무시하는 걸까.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리 기회를 왜 자꾸 날려 버리는 걸까. 아니야 무소식은 희소식이 될 수 없다는 걸 우린 너무 병원에서 지겹게 봐버렸던 거야.    


 나는 건강해. 그리고 자주 서글퍼. 같이 아웃백에 가자고. 우리는 아직 날것을 먹지 못하니 스테이크 말고 폭립을 먹자고 했던 거 기억나? 나 폭립 사주기로 했잖아. 그게 서글프다. 조금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왜 서글프고 왜 화나는 일인지는 모르겠어.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달라붙은 것도 아닌데. 그래도 나는 혼자 배 터지게 폭립을 먹어 볼 생각이야. 그걸 추모라고 해도 될까?    


 누나는 죽었어도 카톡이나 미니홈피는 그대로 있다. 그게 참 재밌네. 번호가 없는 번호가 돼도 누나의 옆모습인 프로필 사진은 그대로 있네. 잠을 자는 것은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어. 다른 세계에 있는 또 다른 내 껍질로 향해 가는 거라고. 누나도 그런 건 아닐까?. 거기 누나가 이 편지를 읽는다면 그 세계에 있는 아웃백 비슷한 거부터 알아보려고 할까?   

  

 앞으로도 나는 잘 지낼 거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내년도 재발 없이 잘 살아갈 거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참 많게 느껴진다. 많지만 적다. 고마워. 그리고 조만간에 아니 좀 멀리 있다가 봅시다. 이 편지를 쓰고 게임을 할 예정이야. 난이도는 최고로 낮추고. 그 무엇에도 지고 싶지 않아.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싶다.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게임만 하네. 그리고 치킨도 먹을 예정이다. 단순한 쾌락에 빠져 사는 것 같아. 여하튼 인제 그만 쓸 거다. 안녕. 가려면, 좀 좋은 계절에 가지.    


 201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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