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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an 06. 2020

담담함에 대하여.

 젓가락을 든다. 나는 젓가락을 올바르게 잡지 못한다. 남들이 보기에 어떻게 저렇게 잡을까 싶을 정도로 엉망이다. 하지만 나름 반찬을 잘 잡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몇 번 교정용 젓가락을 사용 해봤었지만 쉽지 않았다. 밥 먹는 것 까지 남 눈치를 보며 먹어야 하나 싶어 집어치웠다.          


      

 누군가는 내게 사소한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큰일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묻는다.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름의 젓가락질에 익숙하고 나름의 젓가락질에 능숙하다. 예의에 어긋난다고 누군가 말한다. 첫인상에 좋지 않다고도 누군가 말한다. 누군가가 말한다. 누군가만 있다. 누군가는 나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아버지가 전립선 암 의증을 진단 받았다. 우리 가족에게서는 어머니의 갑상선 암과 내 백혈병 그리고 십여 년 전에 걸렸던 아버지의 림프종 이 후 네 번째로 발병한 암이다. 비대해진 전립선에 대해 설명하는 의사나 조직검사에 대해 설명하는 담당 간호사 앞에서 나는 담담했다. 젓가락질 같은 것이다. 다른 가족의 일상과는 다른 우리 가족의 일상인 것이며 거기에 대한 반응도 이제 능숙해진 것이다.      


 내 병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나는 반농담 반진담으로 내일 당장 재발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항상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공포가 없다. 공포가 지속된다면 미쳐버리지 않을까. 그리고 공포를 지속할 정도 나는 집요하지도 부지런하지도 못하다. 엑스자로 교차되는 젓가락질처럼 남들이 보기엔 불편하지만 내게는 그냥 일상이다. 별 일이 아닌 것이다.               



 아버지 검사 결과는 13일 날 나온다고 한다. 간호사나 의사는 암이 아닐 확률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있던 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암이 아닐 확률을 이야기 한다고 해서 암일 확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안 좋은 상황을 염두하고 마주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절망하거나 무서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과 다를 것 없는 날이다.      


         

 그래도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내 태도에 조금 놀랍기는 하다. 아버지는 유년에 내게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담담한 일상이라고 포장하며 나 또한 어떤 심적인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니가 갑상선 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는 혼자서 통곡했으니까. 병이 일상이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와 내 불행을 동일시하는 것이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해도 내 담담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담담하지만 담담한 내가 조금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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