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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l 20. 2020

오만하지 않은 일상을 위하여

 내 주변에 아무도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문장을 일기장에 쓴 적이 있었다. 스무 살이었고 캠퍼스 뒷산에서 매일 술을 마시고 나뒹굴던 것이 낭만이라 믿었던 시절이었다. 

 정말 그 당시에는 내 주변인이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단순히 시의 소재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오만했던 것일까. 당시 내가 접했던 죽음은 영화나 문학 정도 밖에 없었다. 현실적인 죽음을 묘사했다는 작품을 보며 저것이 낭만이구나 싶었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낭만은 도대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주변인의 죽음을 겪은 적이 없냐고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당장에도 이 글을 쓰면서 초등학교 시절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니 말이다. 할머니는 담배를 좋아하셨다. 큰집에 갈 때마다 가는 길 도중에 있던 담배 자판기에서 담배를 사 할머니에게 드리던 것이 규칙이었을 정도로. 거기다 그것도 모자라 길거리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피시기까지 하셨다. 몽당 담배 한 개비를 물며 새삼 행복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할머니. 평생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서울에 불려와 할 수 있는 일이란 담배 피는 것 밖에 없어 보이셨다. 할머니는 담뱃불에 타 돌아가셨다. 거동이 불편하게 되셨을 때에도 담배는 포기하지 못하셨다. 유일한 삶의 낙이던 담배는 이불에 옮겨 붙어 할머니를 태웠다. 잊을 수 없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잊었다. 죽음 이후에는 망각이 있다. 죽음보다 더 먼 곳에 나는 할머니를 두고 오만해 있던 내 자신을 생각하니 괴롭다.     


 스무 살 이후부터 죽음의 연속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투병을 하면서 알게 된 이들은 대부분 죽었다. 어느 날 정말 친하다 생각했던 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게 되면서부터 매일 아침이면 나는 죽은 이들의 이름을 중얼거리게 되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는 이목구비를 떠올렸다. 경사는 같이하지 못해도 조사는 같이 하는 것이 좋다는 것도 죽은 사람 중 한 분에게 배웠던 이야기. 매번 아침 나는 그들을 떠올리고 그들과 주고받았던 농담을 복기한다. 몇 년 전에 죽은 이들이 어제 죽은 것처럼 생생해진다. 매번 죽는 이들 우리의 대화는 발전이 없다. 매번 같은 질문과 답변을 하지만 매번 새롭다. 사진을 보면서 발전을 이야기 하지 않지만 매번 새롭지. 그들은 매번 죽지만 매번 살아난다. 매번 살아있는 내가 오만해지지 않게 만들어 준다. 이제 나는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도 하지 않고 죽음을 낭만이라 말하지도 않게 되었다.  

    

 투병하며 알게 된 환자의 보호자들은 친한 환자라고 해도 부고를 잘 알려주지 않는다. 소식을 접한 내가 상처를 입을 것 같아서 그런 걸까. 갑자기 소식이 끊긴 이를 구글링해서 부고를 보던 적도 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을 만든 이는 쉽게 포기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아닐까. 투병하는 일이란 죽음은 과정의 연속이란 것을 우리는 안다. 투병하던 사람끼리 만나면 죽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처음으로 카톡 부고를 받았다. 부고 당사자 카톡이 보낸 소식이었다. 과거 젊은 환자들이 모여 서로를 달래며 버티던 카페에서 알게 된 분 이었다. 정모 때 한 번 뵙고 따로 이야기를 주고받진 않고 프로필 사진으로만 서로의 근황을 추측했던 사이였다. 건강한 얼굴의 프로필 사진이 부고 소식을 알리니 기분이 묘했다. 

 애인과 카톡을 주고받다 부고 카톡을 한참 들여다본다. 생각보다 죽음은 더 일상에 가깝구나. 부고 카톡에 답장을 보내고 싶었지만 카톡을 받을 사람은 그 당사자가 아닐 테니 그러지 않기로 했다. 시시콜콜한 카톡들 사이에 부고가 섞여 있으니 언젠가 또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근황을 알려 줄 것 같다. 죽음은 낭만이 아니라 당연하지만 죽음은 죽음이라는 것을, 온전한 죽음은 삶 사이에 있다는 것을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그래도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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