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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15. 2021

태양은 일출을 볼 수 없다.

 새벽. 정적을 깨는 것은 헐떡 거리는 소리였다. 동네를 한 바퀴 뛴 덕분이다. 물도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던데 새벽 공기도 그럴지 모르겠다. 체기 대신 죄책감이 폐 깊숙이 들어찼다. 새벽 공기는 좋지 않은 공기라고 했다. 나는 그걸 또 까먹고 새벽 공기를 신나게 마시며 뛰었던 것이다. 심호흡을 하며 심신의 안정을 취한다. 눈을 감으니 원사님이 손가락질하며 웃고 계신다. 그렇다. 새벽 공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원사님이었다. 


 원사님이란 호칭은 별명이 아니었다. 정말 해군 원사님이었다. 군복을 입은 채 응급실에서 병동으로 처음 올라온 날 나를 제일 반가워해 주셨었다. 

 병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그랬나. 병 앞에선 사병과 간부도 아무 소용없었다. 그래도 원사님은 간부로서 모범을 잃지 않으셨다. 나는 혼자 아프기도 벅찬데 원사님은 주변 환자들도 챙겼다. 한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치료는 내가 먼저 끝났었다. 사병이 원래 간부보다 먼저 전역하는 법이다. 나는 항암으로 치료를 끝냈고 원사님은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셨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식을 받으면 끝난 줄 안다. 아쉽게도 병은 그렇게 자비롭지 못하다. 이식을 받기 위해서 받는 항암은 관해나 공고를 위한 항암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고농도인 데다, 이식이 잘 된다고 해도 숙주반응은 어디로 어떻게 올지 알 수 없었다.


 외래 때마다 뵙는 원사님은 몰라보게 변해 계셨다. 피골상접이라고 했던가. 정말로 뼈와 살이 맞닿아 보였다. 마지막 병문안에서 뵌 원사님 안색은 새벽을 닮아 있었다. 황달이 오셨는데도 그랬다. 그 날 원사님이 운동은 저녁에 하는 게 좋다고 말해주셨다. 새벽 공기가 몸에 좋지 않다고도 말해주셨었다. 숨 쉬는 게 힘겨워 보이셨는데 원사님 주변만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분명 대낮이었는데 원사님 주변만 새벽이었다. 


 저런 상태에서도 나를 걱정해 주시는구나. 죄송스러웠다. 나는 왜 이렇게 걱정만 끼치는 사람인 걸까.


 원사님 주치의 선생님이 알고 보니 내 전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병문안 온 김에 주치의 선생님도 만났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다 원사님 상태에 대해 물어봤다. 폐가 많이 안 좋은 상황이라 했다. 이식 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한 번 연락 오기도 힘든데 그동안 두 번이나 이식센터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원사님은 이식을 거부하셨다고 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원사님을 설득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알겠다고 했었다.


 원사님은 하나님 곁으로 갈 마음의 준비를 다 하셨다고 했다. 원사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나는 조금 화났다. 사모님이나 아이들을 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시다니. 하지만 원사님이 걸어온 길을 알아서 화를 내지 못했다. 대신 하나님이 원사님을 살리시려고 두 번의 기회를 준 것이 아니냐고 다그쳤다. 원사님은 인자하게 웃으시며 말했다. 이식으로 이렇게 되었는데 또 이식을 하고 싶지 않다고. 


 나는 조용히 원사님의 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일출 같은 눈동자였다. 그 상황에서도 나를 위로하고 계셨다. 태양은 일출을 볼 수 없다. 그게 너무 가슴 아팠다. 


 원사님은 결국 돌아가셨다. 사모님도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라 장례식이 다 끝나고 나서야 부고를 알려주셨었다. 환자에게 환우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을 보는 거울 같은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분들이었다. 그 마음을 알아 나는 덜 괴로울 수 있었다. 


  어느새 감은 눈에서도 햇빛이 느껴진다. 깊은 날숨으로 폐에 가득 차 있던 공기를 내보낸다. 새벽 공기로 몸이 조금 나빠졌을지 모르겠지만 언제 죄책감을 가졌냐는 듯이 마음이 충만하다. 원사님 덕분이다. 그래도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꾸중은 조금 듣겠다. 어쩔 수 없다. 대신 운동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영양제도 잘 챙겨먹어야겠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더 튼튼해져겠다.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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