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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01. 2021

이국의 낯선 땅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 느낌으로.

어느 날 배선실에서의 기록

 늦은 밤. 중년의 남자 보호자는 간호사에게 한소리를 들어놓고도 또 몰래 비어치킨과 맥주를 배선실에서 주섬주섬 꺼내고 있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그런 남자를 멀뚱히 쳐다봤다. 남자는 웃으며 닭다리를 하나 내게 건넸다.      


 남자의 어머니가 관해에 또 실패했다고 한다. 신약을 썼는데도 소용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내게 항암은 어떤 고통이냐고 물었다. 나는 닭다리를 씹으며 남자의 말도 같이 씹었다. 병간호를 오래 해서 그런 걸까. 기름기가 너무 빠졌다. 남자의 목소리도 닭다리도 퍼석했다. 말을 기다리던 남자는 알겠다며 말 안 해도 안다며 맥주를 연거푸 마셔댔다.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저 붉은 얼굴을 간호사들은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의심하기 어렵겠지. 우리 병동에는 밖에 나와 오열하고 들어오는 보호자가 너무 많았다. 의심한다 해도 어쩔 방법이 없겠지. 붉은 얼굴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모두 묻긴 어렵겠지.     


 내일은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봐야겠다며 닭 뼈와 맥주 캔을 정리하는 남자를 본다.

 포기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조촐했다.


 나도 곧 항암을 시작할 것이었다. 어떻게 될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약을 생각하다 그러지 않기로 한다.


 남자는 병동으로 들어가기 전 내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그것은 나에 대한 응원이자 어머니에 대한 미련이다. 남자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국의 낯선 땅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 느낌으로. 서로의 여행길에서 나는 괜찮을 거라고. 당신도 괜찮길 빌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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