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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an 24. 2021

외면을 망각이라 불렀다

 병실 문이 닫혀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밤이 와도 병실 문은 살짝 열어 놨다. 문을 여는 시간조차 위급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병실 문을 닫는 것은 의료진이 아니라 보호자였다. 다른 병실에서 누군가 죽어 병동 밖으로 나갈 때 병실 문을 닫았다. 모든 죽음은 뜬소문이 되길 빌었다.      


 항암이 끝나면 면역력이 사라진다. 언젠가 보호자 중 하나가 항암이 끝난 환자는 신생아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에게 주는 것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소독되었다. 응애. 응애. 응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울음 아니 앓는 소리밖에 없지. 응애. 응애. 응애.      


 항암 도중에 탈이 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문제는 면역력을 기다리는 나날이었다. 애송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라는 밈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맞다. 정말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허공엔 정말 많은 균이나 바이러스가 떠다녔다. 면역력 하나 없다고 균과 바이러스가 숲을 이룬 아마존에 떨어지는 것이다. 항암 사이클 중 한 번이라도 열이 나지 않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에게 죽을 고비란 별 것 없었다. 열이 나는 것이었다.  


 나도 정말 죽을 뻔했던 적이 있다. 균이 잡히지 않았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손등과 발등, 히크만 카테터에서 피를 뽑아 균을 배양해봤는데도 원인 불명이었다. 보편적으로 쓰인다는 항생제를 맞았다. 잡히지 않았다. 다른 항생제를 늘렸다. 잡히지 않았다. 또 다른 항생제를 늘렸다. 잡히지 않았다. 또 다른 항생제를 늘렸다. 잡히지 않았다. 또 다른 항생제를 늘렸다. 잡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더 항생제를 늘렸다 잡히지 않았다. 여섯 개의 항생제를 달았는데도 열이 잡히지 않았다. 거기다 설상가상 먹어야 산다는 말에 먹은 뉴케어에 체하기까지 했었다. 물 먹고 체하면 약도 없다고 하던가. 물도 먹을 수 없었다. 울음 아니 앓는 소리라도 내어야 했는데 앓는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결국 열이 끝까지 잡히지 않아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환자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한 항진균제 암포 테라신 B도 맞았다. 사람의 체질까지 바꾼다는 악마 같은 약이었다. 내게 부작용으로는 심한 오심과 오한이었다. 자던 도중에 발끝부터 서늘한 기운에 깼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서늘한 기운이 서서히 몸을 타고 올라오더니 침대가 흔들릴 정도로 온 몸을 떨게 했다.  체력이 떨어질 때로 떨어져 항상 몽롱하던 상태였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명한 정신 속에서 나는 이대로 죽는다면 죽을만하겠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 친한 형님이 죽기 하루 전 자신의 의식이 반이 날아갔다고 의식의 반을 겨우 붙잡고 있다고 말했었다. 어떤 말인지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죽는 게 사는 것보다 쉬운 순간이 있다. 놓으면 끝인 순간. 응애. 열이 떨어졌다.    

  

 몸이 조금 괜찮아지자 언제 아팠냐는 듯이 까먹고 음식을 탐했다. 고비가 전생의 일 같았다. 그래도 형님은 돌아오지 않겠지.    

 

 병실 문이 닫혔다 다시 열리면 평소보다 보호자들은 더 분주해 보였다. 조용하던 환자들은 다시 앓는 소리를 냈다.

 예전엔 아기들이 백일 전에 많이 죽어 출생 신고를 늦게 했다던데. 있었지만 없는 아기들을 생각한다. 다음 생엔 건강하게 태어나달라는 기도를 들었겠지. 보호자가 남은 짐을 정리해 나가면 죽은 환자는 있었지만 없던 사람이 되었다 병실 문을 닫은 덕분에 환자는 어딘가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애도는 죽은 이를 평행세계로 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금방 새로운 환자가 빈자리에 들어온다. 아무도 그 자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불길한 소문은 묻히기 마련이라지만 아무도 티를 내지 않았다.


 진실과 다르게 소문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진다. 하루를 보내는 일전생을 보내는 것 같다. 전생이 기억 날 리 만무했다.

 병원 생활이 아무 일 없던 것 같은 것은 때때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겠지. 문을 열고 싶었다. 살았다고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고 모든 일이 진짜라고 문을 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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