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까지 식단을 하고 싶지 않아 식당을 갔다.
메뉴판에는 어떤 연관도 없어 보이는 메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떡국을 먹을까 하다 콩나물 국밥을 시켰다. 스무 살 나는 외식이라면 국밥만 찾았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도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입 맛에 맞는 것도 있었겠지만 나희덕 시인의 「국밥 한 그릇」이란 시를 읽은 것이 컸다. 이문구 소설가를 추모하는 시였는데 그 시를 읽은 후 나는 국밥을 먹는 일 자체에 어떤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국밥에 날계란을 하나 넣고 계란이 익기를 기다리며 이제는 옅어진 숭고함을 생각했다. 공복감과 공허함을 구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덜 익은 노른자를 앞접시에 옮기며 터트린다. 그때는 살면서 내 주변 사람이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좋아했었지. 스무 살의 나는 국밥을 식기도 전에 급히 먹으며 공허함을 채우고 있다 믿으며 공복감만 채웠었다. 앞 접시 채 들어 따뜻해진 노른자를 마신다. 마음이 비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지금 공허한 걸까 공복인 걸까 생각할 여유가 생긴 것 같아 좋다.
식당 텔레비전에서 씨름을 방송한다. 국밥 한 숟가락 먹고 텔레비전 한 번 보고를 반복했다. 중학생 시절 씨름을 해보겠다고 씨름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 갔던 적이 있었다. 벽을 보며 기본자세만 취하다 그만뒀었다. 당기는 것도 그렇다고 미는 것도 아닌 상태를 유지하며 버티는 일은 힘겨웠다. 상대의 어깨에 턱을 걸치고 대치하고 있는 두 선수를 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힘의 방향을 가지고 많은 수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벽에게 수싸움을 졌다. 감독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습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원래 있던 학교로 도망쳤었지. 안다리에 거는 선수와 되치기를 거는 선수의 모습이 숭고해 보인다. 보던 시선을 거두고 국밥을 먹는다. 씨름을 볼 때마다 도망자가 된 것 같다.
오늘도 공복만 채운 것 같다. 식당을 나서고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나를 훈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망가서 된 게 지금의 너냐고 다그칠 것 같았다. 우울도 백혈병도 도망간 그 날의 나비효과 같아졌다. 골목으로, 더 깊은 골목으로 걸었다. 아무도 지나지 않을 곳에 다다라서야 씨름 기본자세를 취해볼 수 있었다. 허리가 시큰했다.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식은땀이 났다. 허리를 두드리며 포기하길 잘했다며 자신을 위로했다. 부끄러워졌다. 나는 공허해서 국밥을 먹으러 간 것도 아니었다. 공복만 채운 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시 집으로 걸었다. 글의 기본자세는 무엇일까. 도망가지 말아야지. 도망가지 않는 게 내게 있어 글쓰기의 첫 번째인 것 같다. 도망가면 결국 남는 것은 부끄러움과 미련뿐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만사 제쳐 두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