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좋은 글은 인공호흡기를 닮았다

2021-02-15

by 조매영

일어날 때만 해도 빗소리가 들렸는데 실내 자전거를 타고 샤워를 하니 더 이상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늘은 음악 대신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쉽다. 창문을 열어 다시 한번 확인한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 창문을 닫지 않는다. 비 냄새와 새벽 냄새가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마음에 든다.


닭볶음탕을 먹고 바로 집으로 돌아온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설날 당일에도 올 거냐는 전화였다. 가지 않겠다고 했다. 갈비를 구워주겠다고 했다. 가지 않겠다고 했다. 떡국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가지 않겠다고 했다. 본가에 오래 있으면 숨 쉬기가 힘들어진다.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아빠를 볼 때마다 안쓰러운 감정이 드는 나를 죽이고 싶어 그렇다. 가족이 있는 자리에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서로의 빈자리를 후벼 파느라 바쁘다.


창문을 열어두어도 이제 춥지 않다. 겨울에는 고독사가 그렇게 많다지. 봄이 되어서야 새싹처럼 냄새가 고개를 내민다고 하지. 어제저녁에는 유튜브에서 고독사 청소하는 것을 봤다. 핏자국을 닦으며 담담하게 이것은 입에서 나온 것이라 말하는 특수 청소부가 쓸쓸해 보였다. 그러다 잘 닦이지 않는다며 핏자국을 끌 칼로 밀어내는 모습에서는 당신이 있을 곳은 이제 여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 내가 쓸쓸해졌다.


평소에 하루에 두 편을 쓰다 연휴 동안 하루에 한 편을 쓰니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기분이 들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브런치에 올라온 글뿐만 아니라 지인의 글도 읽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정도 나르시시즘이 있다는데 나는 왜 나 빼고 다 천재 같은 걸까. 다양한 감정들을 읽을 때마다 부럽고 괴롭다. 나는 항상 내 이야기에도 급급하다.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숨소리가 가빠지거나, 느려지거나, 불규칙해지거나, 규칙적이게 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잠시 책을 덮어두고 숨소리에 집중한다. 글을 쓰던 사람도 이런 숨소리를 내며 글을 썼겠거니 한다. 그리고 다시 읽으면 읽히지 않거나 지나친 것들에서 작가가 손을 흔들고 있다. 좋은 글은 읽을 때 잠시 멈추거나 다시 되돌아가 읽는 이유는 그들의 숨소리가 분명해서 그렇겠지.


깊게 심호흡을 해본다. 목을 조르는 사람은 없다. 글을 쓸 때 급하게 한 호흡으로 끝낼 필요가 없다. 숨을 마음껏 쉬어도 된다. 내가 있을 곳은 아직 여기라고 중얼거려본다. 좋은 글을 읽는 것은 인공호흡기처럼 나를 살린다. 지속되진 않지만 당장은 그렇다. 결국 자가 호흡을 해야 한다. 다시 깊게 심호흡을 해본다. 글을 쓰며 내 숨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내 숨소리는 이런 것이다 되새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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