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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집이 무당집이라고 우리 집이 달라질 게 있나요

by 조매영

주말에 낮잠을 자는데 북소리에 깼다. 아랫집에서 들리는 소리다. 아랫집은 무당집이다. 이사 오고 일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건너편 건물에도 무당집이 있었다. 신기 들린 북소리는 천지를 울린다고만 생각했지 아랫집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건너편 무당집이 이사를 가도 북소리가 계속 들렸다. 이상해서 아랫집 문을 두드리니 작은 방을 사당으로 쓰고 있는 게 보였다.


눈을 뜬 채 가만히 북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진다. 귀신은 어느 방향에서 오는 걸까. 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제사를 지낼 때 문을 열어둔다고 들었는데 부디 문으로 오갔으면 좋겠다. 내 몸을 뚫고 헐레벌떡 무당에게 달려가는 동자를 생각하면 귀여우니 그건 또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친구에게 아랫집이 무당집이라고 하니 부럽다고 한 적도 있었다. 복채를 깎아주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무속신앙에 관심이 없고 무당집의 주된 손님도 동네 할머니뿐이라 의미 없다 해도 믿지 않았다.


불편한 점은 없냐고 묻는다면 있다가 없다를 반복한다. 북소리는 적응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것보다 가끔 계단에 막걸리를 뿌려 놓는 것이 거슬렸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술에 취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도 날이 추워진 후부터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무당도 손님도 늙어서 그런 것 같다. 귀신이 귀신에게 접신하지 못하는 법이지.


어느 귀신이 이렇게 지각을 하는 걸까. 북소리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도 가만히 누워 북소리에 맞춰 죽은 사람들을 불러봤다. 아무도 오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귀신이 오는 길도 정체 구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도 오고 가기 힘든데 귀신이라고 다를까. 귀신도 바쁜 세상이다. 이런 깨달음은 무당집 위에 살아서 깨달을 수 있던 거겠지. 사람 사는 곳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아니 사람이었던 것이 있는 곳은 별반 다를 게 없는 거겠지. 누군가는 무당집 위에 산다면 걱정부터 하던데 이런 깨달음도 있고 크게 나쁘지 않다.


북소리가 멈췄다. 귀신이 왔나 보다. 이승 저승 통틀어서 내가 제일 게으른 것 같다. 잠자리를 어기적어기적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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