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력은 색이 바래지 않는다

by 조매영

초등학교 1학년일 때로 기억한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퇴근하는 엄마와 같이 집에 가는 길이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파는 떡꼬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돈이 없다고 했다. 생떼를 부렸다. 10분 거리를 한 시간 동안 걸었다. 엄마는 마음대로 하라며 혼자 앞서 가려할 때에는 치마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드러누웠다.


한참을 그렇게 대치하는 사이 중년의 남자가 친한 척 우리에게 다가왔었다. 그는 내게 다정한 목소리로 훈계했다. 엄마에게 버릇없이 그러면 안된다고. 엄마는 자신의 편이 생긴 것이 반가웠는지 웃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두 손으로 내 목을 감쌌다. 그리고 가볍게 들어 올렸다.


숨을 쉴 수 없었다. 허우적거려도 바닥도 그에게도 닿지 않았다.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엄마는 그제야 이상하다 느꼈는지 남자의 팔을 잡고 말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감싸던 두 손을 놓았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입맛을 다시며 아무렇지 않게 멀어졌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엄마도 나도 몰랐다. 우리는 더 이상 다투지도 않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25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나 혼자 불현듯 떠오른 일이다. 그래서 엄마도 기억할까 전화해 물어보니 잊지 않은 일이다. 엄마는 그와 내가 아는 사이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고는 들을 리 없는 그에게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부었다.


요즘 폭력이 이슈다. 폭력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찾아봤다. 가해자를 욕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지만 피해자에게서 폭력의 원인을 찾거나, 당시에는 가만히 있다 왜 이제 와서 이슈화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피해자를 탓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엄마에게 생떼를 부려서 폭행을 당한 것 아니냐며 화낼 것 같다. 가해자에게 감정 이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년의 남자도 혹시 댓글 단 사람 중에 있지 않을까.


당신이 아니라 엄마에게 잘못했던 거라고, 우리는 그때 미처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다고, 힘이 없었다고,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되뇌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댓글을 마주한다.

목이 욱신거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랫집이 무당집이라고 우리 집이 달라질 게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