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우린 여러 감각을 가졌어요

2021-02-26

by 조매영

어제저녁 처음으로 ZOOM을 했다. 하단에 내 얼굴이 나와 당황했다. 회의 때문에 ZOOM을 켠 건데 자꾸 내 얼굴에 눈이 갔다. 말을 하기 어려웠다. 말하는 사람마다 화면이 커졌다. 나도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의 모니터나 휴대폰에서 저렇게 크게 나오는 걸까. 끔찍했다.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종례 시간에 명상을 시켰었다. 눈을 감고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우주에 놓이거나 행성들 사이를 거닐었다. 나는 우주를 거니는 것보다 내 안에서 들리는 온갖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어서 좋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라던가 위장이 무언가를 소화시키는 것이 좋았다. 피부에 닿는 선생님의 목소리라던가 짝꿍에게서 들리는 숨소리가 내 윤곽을 결정 지어주는 것이 좋았다.

나는 거울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생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영원히 보고 싶지 않다. 남이 나를 외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치지만 나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글을 쓰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 있는데 눈을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눈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는가.


회의가 끝나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해졌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들 얼굴을 봐서 좋았지만 얼굴만 보는 일은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요즘은 ZOOM으로 수업도 하고 스터디도 하고 회의도 한다던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만 이상한 것 같다.


눈을 감고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눈으로 봤던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놓고 다른 감각에 대입시켜본다. 이제는 영상의 시대라고 하던데 나는 많이 뒤처진 사람 같다. 시각 외에 많은 감각이 둔해진다는 것이 무섭다. 나는 나를 지우고 윤곽만 남긴다. 회의하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그 사람들을 만나서 느끼게 될 여러 감각을 덧칠해본다. 색칠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평면적이었던 이들이 내 안에서 입체적으로 변한다. 진짜로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 되었다. 피곤함이 덜해졌다.


언젠가는 영상에서도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하던데 그때야 나는 마음 편히 ZOOM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도 설마 상반신만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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