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심각한 문제와 마주 할 때 나는 차단 목록을 확인한다.

2021-03-04

by 조매영

일어나자마자 치과 번호를 차단한다. 매번 갈 때마다 치료할 곳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났다. 왜 한 번에 설명하지 않은 걸까. 영업 노하우겠지. 이해한다. 그래도 밉다. 사전에 설명하지도 않던 곳을 갑자기 치료해야 한다고 할 때마다 지긋지긋했다. 번호를 차단하니 마음이 놓인다. 차단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글을 쓰면서 글에 타자의 시선이 많이 개입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남들에게 보이는 글이니 어느 정도는 당연하지만 너무 과하다는 것이 문제다. 균형이 어긋난 상태로 글을 쓸 때마다 나는 고꾸라지는 기분이다. 나는 출판이 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이 있다. 특히 아침 일기는 그렇다. 그런데도 눈치를 보고 어느 순간 어설픈 반성으로 글이 끝나는 것을 깨달았다. 깨달았으니 조금 더 사적이고 현실의 이야기를 써야지. 아침만이라도.


관심은 좋지만 머리를 비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기본을 중시하라는 말이 나온 거겠지. 기본만이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배경이 되어 줄 것이다.


브런치를 쓰면서 좋은 점은 내 기준에서 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인데 단점은 긴 글만 써서 올려야 할 것 같은 압박감도 생겼다는 것이다.


내 기본은 시(詩)다. 잊지 말아야지.


실수로 친한 친구의 번호에 차단 버튼을 누른 것을 발견한 기분이다. 시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고 괜히 원망하고 미워했다. 먼저 연락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고민을 그만하자. 일단 차단부터 푸는 것이 순서다. 자책하다 차단을 푸는 것을 까먹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작업 공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사무실을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다니 두근거린다. 이제 환경을 탓하기도 힘들어졌다 사무실을 구한 것이 차단을 푼 것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나처럼 명확하게 시작점을 마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겠지. 모두 어떤 마음인지 궁금하다.


당신의 기본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시작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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