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물

2021-03-05

by 조매영

좋아하는 시인의 부고를 오늘 읽었다. 작년 10월에 죽었다고 한다. 암이었다고 한다. 시인의 시를 다시 읽었다. 지금 읽어도 좋았다.


나는 그 시인에게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과거 신춘문예 당선 시집에는 시인들의 휴대폰 번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2006년에 데뷔한 시인들에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다짜고짜 문자를 보냈었다. 그녀는 친절하게 내게 조언을 해줬었다. 지금 생각하면 열정으로 예의 없음을 숨겼던 아이였네.


시인에 대한 소식을 검색하다 우연히 시인의 스승과 나눈 대화를 읽을 수 있었는데 자신이 죽으면 시가 버려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에 가슴이 아팠다. 문학동네에서 유고시집이 나올 것 같은데 언제 나올는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던 시들도 다 담겨 있으면 좋겠다.


원래 오늘 아침 일기로는 내일 생일이란 것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좋아하는 시인의 죽음을 알게 되니 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시인의 부고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너무 늦게 알게 될 뻔했다. 오늘내일은 종일 시인의 시를 찾아 필사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과거처럼 친절한 조언 문자를 받은 기분이다. 당시에도 지금도 당신의 시는 내게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의 시는 버려질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원래 생일을 챙기지 않았는데 애인을 만나고 나서부터 생일을 챙기게 되었다. 정확히는 챙김을 받게 되었다. 어릴 적에 어린이집에 다녔을 때 합동 생일 파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런 날엔 엄마는 어린이집에 나를 보내지 않았다. 종교 때문이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쓰게 될 것이다.


애인에게 생일을 챙김 받고 나서부터 생일이 되는 날이면 우울해졌다. 애인을 만나 생일을 기념할 때면 필사적으로 우울하지 않은 척했다. 그냥 내가 태어났었구나 그냥 뚝 떨어져서 걷어 차인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 다리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믿었던 시기도 있었지. 차라리 그게 속이 편했었다.


애인은 몇 주전부터 생일 선물로 뭐가 좋겠냐고 물었다. 애인에게 무언가 선물하는 것은 좋은데 받는 것은 힘들다. 나는 정말 원하는 것이 없으니까.

무언가 바란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어릴 적에 베개 밑에 변신 로봇이 있던 적이 있었다. 생일이었던가 새해 선물이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인 선물이었다. 처음 변신 로봇을 발견했을 때 참 행복했었다. 이 후로 기념일마다 베개 밑을 들여다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매번 아무것도 없었지. 바라는 순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배웠다. 선물은 스스로나 타인에게 주는 것인 것도 그때 배운 것 같다.


내일은 애인과 시인의 시를 읽는 것도 좋겠다. 앞으로 생일은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는 날로 정하는 것도 좋겠다. 내가 세상에 온 날이 아니라 좋은 시가 내게로 온 날이라 불러도 좋겠다. 내일 애인을 만나면 물어봐야지.




오버

이윤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버

널 떠나기로 했다 오버

엔진이 툴툴거리는 비행기라도

불시착하는 곳이 너만 아니면 된다 오버

열대 야자수잎이 스치고 바나나 투성일 거다 오버

행복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 오버

죽이 끓고 변죽이 울고 이랬다 저랬다 좀 닥치고 싶다 오버

원숭이 손을 잡고 머리 위 날아가는 새를 벗 삼아

이구아나처럼 엉금엉금이라도 갈 거다 오버

왜 그렇게 쥐었다 폈다 꼬깃꼬깃해지도록 사랑했을까 오버

사랑해서 주름이 돼버린 얼굴을 버리지 못했을까 오버

엔꼬다 오버

삶은 새로운 내용을 원하였으나

형식 밖에는 선회할 수 없었으니

떨어지는 나의 자세가 뱅글뱅글 홀씨 같았으면 좋겠다 오버

그때 네가 태양 같은 어금니가 반짝 눈부시도록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오버

지구는 속눈썹으로부터 흔들리는 풍경으로부터

추억을 모아주고 있지만

태어나 참 피곤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려 다오 오버

내 손에 쥔 이 편지를 부치지 마라 오버

희망이 없어서 개운한 얼굴일 거다 오버

코도 안 골 거다 오버

눅눅해지는 늑골도 안녕이다 오버

미안해 말아라 오버

오버다 오버


- 2008 젊은 시 <기 발표작>



고인의 시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를 옮겨 적습니다. 모두 함께 즐겼으면 좋겠네요.

故이윤설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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