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 마디가 트더니 갈라졌다. 로션이나 오일을 발라도 좋아지질 않는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살았는데 왜 이런 걸까. 작년과 달랐던 점들을 생각해본다. 글을 많이 썼다. 우물에서 물을 퍼올리듯 마구잡이로 썼다. 산다는 것은 영혼을 증발시키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컴퓨터 화면에 반사되는 내 얼굴이 쾡하다. 근래에 너무 많은 영혼을 퍼올린 것은 아닐까.
혹시 물이라도 마시면 좋아질까 싶어 1.5L를 단번에 마셔보지만 소용없다. 내부가 망가지기 시작하면 외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좋은 책이 내 안을 적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시를 옮겨 적는다.
뒤늦은 대꾸
신기섭
빈 방, 탄불 꺼진 오스스 추운 방,
나는 여태 안산으로 돌아갈 생각도 않고,
며칠 전 당신이 눈을 감은 아랫목에,
질 나쁜 산소호흡기처럼 엎드려 있어요
내내 함께 있어준 후배는 아침에 서울로 갔어요
당신이 없으니 이제 천장에 닿을 듯한 그 따뜻한
밥 구경도 다 했다, 아쉬워하며 떠난 후배
보내고 오는 길에 주먹질 같은 눈을 맞았어요
불현듯 오래 전 당신이 하신 말씀; 기습아,
인제 내 없이도 너 혼자서 산다, 그 말씀,
생각이 나, 그때는 내가 할 수 없었던,
너무도 뒤늦게 새삼스레 이제야
큰 소리로 해보는 대꾸; 그럼요,
할머니, 나 혼자도 살 수 있어요,
살 수 있는데, 저 문틈 사이로 숭숭 들어오는,
눈치 없는
눈발
몇
몇,
시를 옮겨 적고 나니 몸도 마음도 축축해졌다. 내게 있어 출발과도 같은 시였고 시인이었다. 내게서 증발했던 영혼이 깨끗한 비가 되어 내린다.
어제 제주 4.3 다크투어에 대해 찾아봤다. 조만간 제주에 내려가 하루에 유적지 한 곳을 보는 여행을 해야지. 죽은 사람의 증발한 대화와 산 사람의 고여있는 울음을 생각하며 마음속 그들의 비를 기다릴 것이다. 비가 온다면 나는 그곳에 놓여 있을 작은 돌을 볼 것이다. 그 돌은 돌무덤이 되지 못한 돌이거나, 돌무덤에서 굴러 떨어진 돌일 것이다. 도망가던 사람들의 발길질이 날아다니던 돌일 것이다. 총부리를 겨누던 사람의 걸음을 멈추게 했던 돌일 것이다. 그 멈춤으로 몇 명이 더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배고픔을 달래려 알사탕 대신 빨아먹던 돌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