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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21. 2021

누군가에게는 달고나가 구원일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으로 기억한다. 학교 후문에 30대 초중반 부부가 번갈아 나와 달고나를 팔았었다. 돈이 있든 없든 하굣길에 나는 매일 그곳에 갔다.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국자를 나무젓가락으로 휘젓는 모습이 그렇게 재밌었다. 오래된 똥색이던 것이 황금색으로 변하는 순간 매번 탄성을 나왔다. 돈이 있는 날에는 달고나를 조금씩 뜯어먹으며 구경했고, 돈이 없는 날에는 괜히 민망해 호객도 하며 구경했다. 처음에는 마주 앉아 구경했지만 나중에는 옆에 나란히 앉아 구경했다. 돈이 없는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날이 추워지면서 손님은 줄어들었다. 부부는 손님도 없고 하니 나를 말동무 삼았다.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앞으로 살아갈 계획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끔 호응도 하며 열심히 들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희망이 가득했고 따뜻했다. 뿐만 아니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감할 때 뽑기를 하나 꼭 쥐어주었는데 그게 참 좋았다.


 집에 가면 달고나는커녕 군것질 거리도 보기 힘들었다. 아빠는 내가 군것질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 했다. 동생들에겐 군것질 거리를 잘만 사다 줬으면서 그랬다. 동생들이 혹시나 나를 주기 위해 남기면 욕을 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뒤에서 나를 주워 온 자식이 아닌가 수군 거리기도 했다는데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부부가 준 달고나로 차별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나는 더 외로워졌을 것이다.


 달고나는 부부에게 꿈의 양분이었고, 내게는 구원이었다.




 배달 서비스로 달고나가 왔다. 오랜만에 보는 황금색이 마음을 흔든다. 후식으로 먹으라고 왔겠지만 먼저 포장을 뜯었다. 달고나는 씹어야 제맛이다. 오랜만에 먹으니 달고나가 어른의 맛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면서 쌉쌀하다. 삶이 마냥 달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는 것을 어린 날에 달고나를 먹으며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는 조금 더 달달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금 더 쌉쌀한 맛이 강한 것 같다. 맛도 독서도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데 달고나의 맛이 변함이 없다면 내가 참 쌉쌀하게 살아왔나 보다. 맛을 음미하며 씹고 있는데 딱딱한 것이 씹힌다. 몇 번을 씹어도 씹히지 않고 딱딱하다. 손바닥에 뱉었다. 아무리 봐도 달고나 조각인데 이상하다. 손으로 눌러봤다. 딱딱하다. 입으로 가져가 다시 한번 씹어본다 딱딱하다. 불량인 것 같은데 이런 걸 서비스로 주다니. 기분이 나빠졌다. 식당에 항의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걸며 화를 식히기 위해 물도 한 잔 마신다. 이가 시리다. 이상하다. 손가락으로 입을 벌리고 거울을 본다.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은 달고나가 아니었다. 왼쪽 어금니의 금 인레이가 빠진 것이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빨리 끊는다. 인레이를 몇 번 맞춰보려고 했는데 안 맞는다. 꼭꼭 씹은 덕분에 인레이 모양이 변한 것 같다.


 치과에 가니 서비스로 받은 달고나가 수십만 원짜리로 변해버렸다. 연금술사가 된 것 같았다. 연금술사는 연금술사인데 마이너스되는 연금술사라니. 눈물이 조금 나왔다.


 어린 날 달고나 장사를 하던 부부와 이제 내 나이가 비슷해졌다. 그들은 내게 베푼 것이 결코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가며 분명 여건도 좋아진 것 같은데, 구원은 무슨 행복해지기도 어렵다. 고민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들이 팍팍한 와중에도 나를 쫓아내지 않은 것이 감사하다.


 그 날의 구원이 나비효과 되어 크게 어긋나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비록 마이너스 연금술사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부부도 그 날들이 좋은 나비효과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의 나도 미래의 나를 위해 날갯짓을 잘해야 할 텐데. 달고나 대신 인레이나 씹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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