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Nov 01. 2020

내 안의 골목

우리는 골목에 앉아 독백을 주고받는 중이다.

  나는 골목을 좋아한다. 길을 가다가 낯선 골목을 보면 참을 수 없다.



  연무기를 쫓아 골목을 헤매던 어릴 적보다 조금 발전했구나. 연무기가 없어도 골목을 탐방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살고 있다고 골목에 들어와 담배를 피우지 말아 달라는 글 아래에 수북한 담배꽁초라던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못해 드러누워 있는 자전거와 폐가와 폐가 옆 담벼락에 박혀 있는 유리 조각이 즐겁다. 낯선 창문들이 익숙한 표정으로 골목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좋다.      



  일상은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과 무던함이 뒤엉켜 있는 것이라 하는데 살다 보면 그중 여러 감정은 증발하고 하나만 남는다. 낯선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어떤 감정을 남기고 살아가고 있을까     



  여러 것들이 뒤엉켜 있는 골목에서 처음 보이는 것이 내게 남은 감정일 것이다.

  유년을 보냈던 미아동은 유난히 골목이 많았다. 절벽 같은 골목도 있었고 계단만으로 이루어진 골목이 있었다. 뱀 길이라고 불렀던 곡선으로 이루어진 좁고 어두컴컴한 골목도 있었다. 나는 골목 사이를 뛰어다녔고 도망 다녔고 숨기도 했었다. 그래도 골목의 끝은 항상 집이었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 달라는 글 아래에 담배꽁초를 바라보는 주민처럼 나는 내쫓기고 맞아도 돌아갈 곳은 집 밖에 없었다. 매일 집에 들어갔고 매일 골목으로 나왔다. 내게 골목은 동화책에서 봤던 은신처였다. 안식을 느낄 수 있는 은신처가 아니라 언제 쫓아올지 모르는 두려움의 은신처였지만.      



  여러 것이 뒤엉켜 있는 골목을 보니 증발한 감정의 기억들이 결로가 되어 달라붙는다. 골목은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검은 봉지가 가득했고 취한 사람들이 가득했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으며 지나가던 사람들도 가득했다. 그 자리에는 그래도 발길질하거나 화를 내던 아버지는 없었다. 어느 골목으로 가도 낯선 사람들이 있었지만 익숙한 안정감이 있었다. 이제 나는 맞지도 도망가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곰팡이가 피기 전에 닦아낸다.

  아버지에게 분노해도 좋아질 것이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는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떻게 다니게 되었을까. 모르겠다. 왜 내가 어릴 때 다니지 않았을까.

 한 번인가 아버지를 따라 보호자 신분으로 정신과에 갔던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누군가 자신을 공격할지 모르겠다고 했고 두렵다고 했다. 나는 누군가가 아니라 당신이 그랬다고 속으로 말했다. 누군가가 내가 된다면 인과응보라고 속으로 말했다. 공격할지 모르겠다가 아니라 공격했었다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당신은 곁에 있으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나를 때렸다고 속으로 말했다. 당신이 두려웠다고 속으로 말했다. 의사가  몇 개의 병명을 차트에 적어내는 것을 훔쳐보았고 혼자 병명을 되내며 며칠을 보냈다. 방법이 없었다.

 분노는 방향을 잃어야 할 것 같았다.     



  낯선 골목에 들어설 때 모순이 주는 익숙함을 좋아한다. 낯선 골목은 골목에 들어서기 전에만 존재한다.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빨랫줄에 걸려 있는 옷들, 술병이 깨지는 소리와 가족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엉켜 있는 골목.  골목에 들어선 순간 나는 일상 속에 동화된다. 내가 가진 감정의 모순을 이상한 모양새로 걸려 있는 빨래처럼 늘여놔도 ’ 보기에 참 좋을 ‘ 뿐 그뿐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골목 안에서는 시작도 끝도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

이전 12화 호구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