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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Nov 10. 2020

심해 상어

병은 걸린 사람은 가라앉게 하고 보호자는 헤엄치게 한다.

 모든 상어가 그렇지는 않다지만 일부는 헤엄을 쳐야만 숨을 쉴 수 있다고 한다.

 자면서도 헤엄을 쳐야 한다고 한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낯선 곳에 있는 것이다. 

 그래도 살겠다고 헤엄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같은 병실을 쓰던 할아버지는 섬망이 와 매일 손등에 꽂힌 정맥 주사를 뽑아댔었다. 

 피가 사방에 튀었다. 매번 할아버지는 이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병원이라고 설명했지만 할아버지는 화만 냈다. 

 할아버지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이었을까. 

 집이라고 해야 했을까. 천국이라 해야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없네. 

 아무것도 몰라도 할아버지는 치료를 받으셨다. 

 그래서 상어가 난폭한 걸지도 모르겠다.     


 난폭함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을 난폭하다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사람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외래 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병동에서는 광기에 휩싸여 피를 흩뿌리던 노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노신사와  여사님이 계셨다. 나는 분명 병실에서 상어를 봤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할머니가 헤엄을 치고 계셨다는 것을.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화를 낼 수 있던 것은 유일하게 낯설지 않아서겠지. 

 할머니는 매일 낯선 할아버지를 어르고 달래며 헤엄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외래 날 비교적 건강하게 마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상어는 할머니였다.

 먼저 진료를 받고 멀어지던 노신사가 잔잔한 물보라 같았었다.

 여사님의 헤엄이 조금 잔잔해 보였지만 끝을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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