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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Nov 03. 2020

어느 날, 복기(復碁)

머리카락을 태우며 보내던 날들이 있었다.


 일곱 살인 나는 혼자서도 라면을 잘 끓여 먹었다.

 세 살 네 살의 동생들은 혼자서 라면을 끓일 수 없었다.

 우리 집은 돈이 없다.

 삼 남매를 모두 어린이집에 보내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아침이면 동생들은 어린이집에 갔고

 아버지는 인력사무소로 어머니는 보험회사로 출근했다.



 아버지는 밥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참지 못했다.

 텔레비전의 콘센트는 붙어있는 날보다 잘려있는 날이 많았다.

 검은 화면보다

 윗집 형이 이사 선물로 준 백과사전을 읽는 것이 좋았다.

 백과사전을 읽는 것보다 창밖을 보는 것이 좋았다.

 창밖은 골목이 있었고 다세대주택의 담벼락이 있었고

 반짝이는 유리조각이 있었다.

 유리조각과 내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유리조각과 눈을 마주치다 보면

 아버지나 동생들이 왔다.

 아버지가 먼저 오는 날에는

 리모컨이나 빗자루를 던지길 내게 던지길 좋아했다

 어느 날은 하수구에 머리를 쳐 박아 놓고 발로 밟기도 했다

 번쩍했다.

 담벼락에 박힌 유리조각은 나를 이해할 것 같았다.     



 머리카락을 태우는 일은 주술과 관련되었다는 것은 나중에 만화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저주한다거나 흉악한 무언가를 만들 때 머리카락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독은 독으로 잡는다고 했던 말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냥 그때는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마냥 좋았다.

 내게서 나온 머리카락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날씨가 흐린 날이면 머리카락을 태웠다.

 뒤틀리며 쪼그라드는 머리카락이 웃겼다.

 머리카락은 내게 무해했지만

 나는 머리카락에게 무해하지 못했다.

 비 내음에 씻겨 흐릿해져 가는 냄새를 맡다 보면

 아버지나 동생이 왔다.

 아버지가 먼저 오면 언제나 맞았다.

 쪼그라들어도, 문 밖에 쫓겨나도

 나는 흐릿해지기만 했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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