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나는 아직 꽃을 보지 못했지만 영락없이 봄이다. 엄마 프로필 사진에 개나리가 피어있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아직 날이 쌀쌀하지만 아이들이 뛰어 놀기에는 좋은 날씨. 하지만 아이들은 뛰어다니는 걸 생각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놀이터에서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딱지치기를 하고 있다. 한 보따리 들고 나와 딱지를 치는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고무 딱지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고학년 때였다. 매번 친구에게 빌려서 딱지 치기를 했었다. 매번 빌려준 친구에게 잃었지. 나는 그때 내게 도박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가방에 딱지를 집어넣더니 하나 둘 자전거에 올라탄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놀이터로 원정을 가는 것 같았다. 멀어지는 뒷모습이 비장해 보였다. 아이들이 사라진 놀이터에서 나는 미끄럼틀을 조금 타고 그네도 탔다. 눈을 감고 미끄럼틀을 오르기도 했다. 예전에 탈출이라는 이름으로 미끄럼틀에서 눈감고 술래잡기도 많이 했었다. 지금 해도 재밌을 것 같은데 같이 할 친구가 없다. 조금 쓸쓸해졌다. 친구들에게 같이 하자고 해도 욕만 먹을 것 같다.
1999년에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텔레비전에서 한참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하던 시대였었다. 7월을 앞둔 어느 날 동네 친구들과 지구가 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논을 했었다. 누군가는 라면을 사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무기를 챙겨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정말 지구가 망하는 거냐고 묻기 바빴다. 나는 라면도 좋고 무기도 좋고 지구가 망해도 좋다고 했다. 지구가 망하면 아빠를 보지 않아도 되겠지. 마땅히 힐 말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더 이상 새로운 의견이 없었다. 우리는 그냥 놀기로 결론지었다. 지구가 망하는 거냐고 묻던 아이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계속 물었다. 우리는 그 아이를 달래며 나는 탈출을 하자고 했다. 오늘은 그냥 탈출이 아니라 지구 탈출이라고 했다. 놀이는 변함없이 미끄럼틀 위에서 술래잡기였다.
십 년도 더 지나서 울던 아이가 정말 지구를 탈출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모두들 지구 멸망을 의논하던 자세 그대로 육개장을 먹었다. 우리는 아무도 탈출을 꿈꾸지 않았다. 라면을 이야기하는 대신 술을 먹었고 무기를 이야기하는 대신 근황을 이야기했다. 놀이터나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탈출을 꿈꾸지 않았다.
봄이다. 잃었던 기억이 돋아나는. 놀고 싶은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