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우리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by 조매영

성인이 되고 6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났던 적이 있다. 선생님은 나를 몽둥이를 들고 학교에 온 아이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가벼운 근황 토크를 하고 헤어졌다. 처음 만났을 때는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기억하는 나를 보니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졌다. 왜 그때 몽둥이를 뺏지 않으셨어요 묻고 싶었다.


어릴 적에 본 선생님은 다른 세계 사람 같았다. 시간이 흘러 만나보니 선생님도 같은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이었네.

어릴 적에 나는 선생님을 신의 축소판으로 봤었던 것 같다. 나를 구원해줄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정작 구원은 한 번도 못 받았네.


나도 누군가를 사람이 아니라 절규로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선생님을 원망하거나 탓하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선생님이라는 직업 속에서만 선생님을 봤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을 선생님으로만 봤는데 어떻게 해야 선생님을 선생님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볼 수 있었을까.


타인을 불신하는 것을 입체적으로 본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알게 모르게 선생님도 몽둥이를 보고 뒤에서 뭔가 알아보지 않았을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무언가 했다면 무언가 한 것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어린 날의 내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물어볼 걸 그랬네.


단정 짓는 일은 스스로에게나 관계를 평탄화 하는 작업이고 질문하는 일은 스스로도 관계도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 같다.


불편하지 않게 질문하는 법을 고민해야겠다. 불편하다고 피하기만 했던 것 같다. 답을 요구해서 그런 것 같다. 아마 답은 내가 이미 마음에 단정 짓은 무엇이겠지. 그래서 내가 불편하지 않으면 타인이 불편하고 타인이 불편하지 않으면 내가 불편했던 것 같다. 답을 지우지 못하겠다면. 답에게도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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