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내게 봄은 아직이다.

by 조매영

연을 끊은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답장을 보내야 할까. 오래 고민했다. 보내지 않기로 한다.


창 밖을 보니 새벽의 끝자락이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 겨울이 지났구나. 문자 내용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내용이었다. 친구 마음에도 봄이 온 것 같다.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길, 불광천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꽃구경 나온 커플이 많이 보였다. 마스크를 쓴 채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재밌었다. 어렸을 때 미래 과학 포스터에 그릴 법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터 속 사람들도 마스크 모양은 달랐지만 모두 마스크를 쓰며 일상을 보냈었다.


다들 전염병이 창궐해도 봄에 두근 거리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갑작스럽게 연락을 하는 친구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죽음도 불사하고 꽃놀이를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내게 봄을 알려주는 것은 짧아진 밤도 화려한 꽃도 아니다. 겨울이 지났다고 해도 봄은 오지 않았다. 4월이 지나야 봄이다. 4월은 내게 이름 없는 계절이다. 피지도 못한 꽃들이 추락하는 계절이다. 새로 돋아나는 것만큼 잃은 것도 큰 계절이다. 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잔인한 계절이다. 올해는 안산에 꼭 다녀와야지.


다시 한번 친구의 문자를 읽는다. 4월이 지났다면, 내 마음이 봄이었다면 답장을 보냈을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관대한 사람이 아니다. 내게 용서한다는 말은 상처가 회복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참고 견디겠다는 말이다. 친구 말고도 견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떨어진 벚꽃잎을 쓰레기통에 넣는 마음으로 친구 문자를 지운다.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서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있다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지. 우리 관계에선 조금 더 일찍 사라졌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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