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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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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07. 2021

익숙해진 불은 방심을 부른다.

 출근하다 말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불을 껐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불안했기 때문이다. 분명 아침밥으로 닭가슴살을 구워 가스레인지 앞에서 먹었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약불을 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번이나 냄비를 태운 전적이 있는 터라 뛰었다.


 다행히 불은 꺼져 있었다. 긴장이 풀리니 발목이 시큰거렸다. 급히 오느라 발목이 삐끗한 것도 몰랐나 보다. 불안은 몸을 다치게 한다. 휴대폰을 보니 아무리 빨리 가도 지각이었다.


 집에 나와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건물 전체를 하늘색 페인트로 칠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다세대 주택에 하늘색 페인트를 칠해놓으니 보기 흉하다.


 집을 보기 위해 처음 이 동네에 왔던 날을 기억한다. 그때는 저 집도 보편적인 다세대 주택이었다. 지금은 원룸으로 개조된 1층도 보편적인 가정집이었다. 그 집에 살던 기저귀 차림으로 해바라기 하던 노인과 눈을 마주쳤었다.


 내가 이사 오고 얼마 되지 않아 노인의 집에서 불이 났었다. 노인은 죽었다고 했다. 집은 한참을 검게 그을린 채로 방치되어 있다가 탄내가 사라진 어느 날 하늘색 페인트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늘색 페인트는 다신 불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지 같은 것일까. 쨍한 하늘색이 태풍이 지나간 하늘 같다. 방심하지 말라고. 하늘색 집은 말하고 있었다. 불을 끄는 것도 노인도 절대 잊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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