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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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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24. 2021

결혼식에서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기로 다짐했다.

 결혼식에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로 처음 가는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장을 가기 위해 기모 맨투맨을 다시 꺼냈다. 살이 찐 덕분에 입을 수 있는 옷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깔끔하게 보이는 옷이었다.  

    

 결혼식장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반이 걸렸다. 더웠다. 하필 자리 잡은 칸이 약냉방칸이었다. 다른 자리로 옮길까 곁눈질하니 옆 칸에는 앉을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서 있었다. 축의금을 고민했다. 오만 원을 내기로 했다. 땀이 났다. 더워서 나는 돈인지 지출에 대한 식은땀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식대 정도만이라도 메꿀 수 있는 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들었다.   

  

 신부 대기실에 가니 신부와 사진을 찍는 시간은 이미 끝나 있었다.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신부는 과거 혈액종양내과 병동 간호사였다. 모두 빛나고 멋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유난히 빛나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치료가 끝나고 누나 동생을 하게 된 관계였다. 누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병동에선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야 해서 그런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어색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면무도회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아는 사람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눈빛만으로 사람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았다. 축의금을 내고 일단 식권을 받았다. 예식이 가까워질수록 초조해졌다. 다행히 간호사 누나들을 만났다. 먼저 알아봐 주지 못했다면 밥도 못 먹고 갈 뻔했다. 현직으로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인사만 하고 갔다고 했다. 코로나는 축복도 위로도 마음 편히 못하게 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가 천직 같던 누나였는데 퇴직하고 간호사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동료였던 간호사 누나들에게 물어보니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라고 했다. 꼼꼼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꼼꼼하게 마음에 상처와 피로가 쌓였을 거라고 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는 누나를 보면서 진심으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직장 동료가 느낄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겪으면서도 환자에겐 티 내지 않았다는 것이 대단했다. 정신 차리고 온전히 축복하는 마음으로 박수를 다시 쳤다.     


 신랑 신부 지인 및 직장 동료 사진을 찍을 때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신부 측엔 여자들밖에 없었고 그 사이에 있기엔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신랑 측에 있기에는 모두 정장을 입고 있어 부끄러웠다. 기둥 뒤에 숨어 사진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가방을 가지로 가기에는 눈에 너무 띄었을 것 같았다. 조명이 어두워서 다행이었고 옷이 어두운 색이라 다행이었다. 기둥에 기댄 채 듣는 화기애애한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밥을 먹으며 병원 이야기를 했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한 소리를 들었지만 웃어넘겼다. 당시에 누나들도 20대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살긴 했는데 잘 살간 어렵다고 투정을 부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들 병원을 벗어나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결혼식도 얼마 없겠지. 살아남았다가 아니라, 잘 살아 있다고 말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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