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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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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13. 2021

가족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제일 먼저 닮는다

 본가에 들어서자 라온이의 옆태가 제일 먼저 보였다. 라온이는 본가에서 키우는 고양이 네 마리 중 첫째다. 나이도 첫째고 함께 한 것도 첫 번째인 고양이.


 반가운 마음에 이름을 불렀지만 역시 대답은 없었다. 꼬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양이의 꼬리는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던데, 오랜 항암은 다른 자아까지 지치게 만든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라온이 옆에 누웠다. 숨소리가 들렸다. 옅지만 집요했다.


 콧바람이 신경 쓰였는지 라온이가 일어났다. 초점이 없는 눈으로 나를 조금 보더니 안방으로 향했다.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녀석의 뒤태가 낯설지 않았다. 자신은 어떻게든 살겠다고, 의지를 보여주겠다며 비루한 체력으로 병동 복도를 거닐던 사람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동생에게 처음 라온이가 아프다고 들었을 때 병원비부터 먼저 물었었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휘청거리며 도착한 안방에서 라온이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은 버티겠다고, 안 좋은 소리 말고 응원만 해달라는 것처럼. 시선을 견디며 묵묵히 씹어 삼켰다.


 물까지 잘 챙겨 먹고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스크래치 위에 식빵 굽는 자세를 취하고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매번 병원에서 병원 고양이에게 냥냥 펀치를 날리고는 병원 고양이 행세를 한다더니 집에서 그 체력을 비축하기 바쁜 것 같았다.


 이놈의 집구석 아프지 않은 이가 없네. 가족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닮는다. 용하다. 다들 어떻게든 살아남았네. 얘도 살아남겠지.


 숨어있는 세 마리의 고양이들을 위해 저녁도 먹지 않고 본가를 나왔다. 라온이를 제외 한 세 마리는 내가 집을 나온 후 키우기 시작한 아이들이다. 녀석들이 계속 나를 낯설어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이 덥다. 죽어서도 땀이 날까. 지긋지긋한 더위 덕분에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적당한 불편함만 가지고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병원에 상주하는 고양이 자리를 냥냥 펀치로 뺏어 놓고는 병원 고양이 행세하는 라온이


낯선 곳에서 더욱 당당해지는 라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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