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덕스럽게 쓰는 제주 여행기

by 조매영

버스를 놓쳤다. 날이 더워 잠시 정자에 앉아 있던 것이 원인이었다. 멀어지는 버스를 보며 손을 흔들며 점프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지도 어플을 켰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노선인 것 같았다. 아무리 찾아도 다음 버스는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걸으며 중얼거렸다. 운전기사는 나를 봤을까. 우스웠을까. 우스웠겠지. 멀어지는 나를 보고도 운전기사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을 것이다. 우스운 것은 그런 것이다. 누구는 우습진 않은데 재밌는 사람이야. 그런 평가를 받는 사람을 보면 부러웠다. 나는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항상 우스운 사람이었다. 우습기 전에 선수 치는 법을 생각했다. 다음에는 버스를 놓치면 춤이라도 춰야겠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는 카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릴까 하다가 방에 들어왔다. 카페에는 주인 부부가 카레를 먹고 있었다. 그들만의 시간에 무임승차한 것 같았다. 그것도 모자라 버스를 놓쳤다고 아무 버스나 골라 탄 기분까지 들었다. 멋쩍게 버스를 놓쳤다고 말하자 부부는 친절하게 삼사십 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침대에 누우니 카레 냄새가 생각났다. 집에서 만드는 카레는 레트로트 카레와 다르게 기분 좋은 안정감을 준다. 나쁘지 않은 아니 오히려 좋은 장소에 내린 기분이 들었다.


돌처럼 작은 것들을 살피고 싶어 시작한 여행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섬세하지 못하다는 것만 깨닫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세면백에 칫솔을 꺼내려다 면도기에 오른손 중지를 베인 적이 있었다. 굴하지 않고 이 닦겠다고 왼손으로 칫솔 꺼내려다 왼손 검지까지 더 깊게 베였다. 면도기부터 꺼내놓으면 될 걸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겠다. 여행을 시작할 때 생각했던 테마는 분명 관찰이었는데 관찰을 정한 순간부터 테마는 실패가 된 것 같다.


한참을 뒹굴거리다 어플을 봤다. 버스가 삼 분 후 도착할 거라 쓰여 있었다. 헐레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이번에는 놓칠 수 없었다. 줄어드는 숫자에 초조해졌다. 뛰면서 버스를 놓치면 춤을 추겠다던 다짐이 떠올랐다. 안된다. 놓쳐선 절대로 안된다. 다짐은 다짐으로 끝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짐을 다짐으로 끝내는데 나는 선수다. 예를 들어 공부라던가 청소라던가.


겨우 버스에 탔다. 목시물굴로 갈 것이다. 목적지를 이제 말하다니. 어디서 출발했는지도 이야기하지 않았구나.


여행기도 실패에 가까운 것 같다. 뭐 어때. 나쁘지 않다. 지금이라도 말하면 괜찮을 거라 믿는다. 내 숙소는 송당리에 있다. 날이 더워서인지 중산간 마을인 송당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이 마을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송당리는 오름이 유명하다. 이런 날씨에 오름보다 바다겠지. 나도 바다에 가고 싶지만 코로나가 무섭다. 아무리 테마가 실패로 변했다고 해도, 실패도 선을 지키며 해야 한다. 살기 위해 산으로 굴로 숨을 수밖에 없었던 4.3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산으로 굴로 향하는데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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