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당리 마을을 산책했다. 예전에 제주를 돌아다닐 때는 하귤을 많이 봤는데 보이지 않았다. 철이 지났나 보다. 집집마다 하귤이 있었을 법한 자리에는 옥수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낮은 돌담 너머 기다랗게 뻗은 옥수수의 당당한 자태를 보니 뻔뻔한 농담을 들은 것 같이 웃음이 나왔다. 시선을 주는 곳마다 옥수수가 있는 통에 좋아하지도 않는 옥수수가 먹고 싶어 졌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옥수수를 하모니카처럼 부르며 걸어 다니는 것도 재밌겠다.
송당리 주변은 오름 천지다. 조금 허풍을 섞자면 앞을 봐도 오름이 있고 뒤를 봐도 오름이 있고 옆을 봐도 오름이 있다. 지인들은 송당리에 있으면서 도대체 왜 오름을 가지 않냐고 성화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름보다 동네 산책이 취향이다. 지인들이 오름 사진을 보고 싶다 닦달해서 그나마 오르기 쉽다는 당오름으로 향했다.
내 퍼스널 컬러는 절대 녹색은 아닐 것이다. 당오름 둘레길 입구를 오르려다가 돌아섰다. 발등에 엄청 큰 거미가 지나간 것이다. 타란튤라인 줄 알았다. 지인들에겐 오름 입구 사진을 찍어 공유하며 오름과 나는 체질상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돌아섰다. 다랑쉬 오름도 그렇고 당오름도 그렇고 쉽지 않다.
산책 코스가 조금 늘어난 것뿐인데 땀범벅이 되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남은 옷이 없었다. 코인 세탁소를 가기 위해 읍내로 향했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읍내에 나온 김에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동네 서점 사장님의 말대로 조금 이른 시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모래사장을 걸었다. 빨래 때문에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며 걸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공허해지고 있었다. 청아한 바다 때문인 걸까. 발목을 붙잡는 모래 때문이 걸까. 아니다. 휴대폰 때문이었다. 휴대폰이 없었다면 사람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가로지르며 고독함을 즐겼을 것이다. 지인들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공유하고 싶다는 핑계로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지인들은 모두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이미 세탁기는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남아있는 옷은 없었다. 날이 좋아서 인지 서서히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상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을 피해 구석으로 가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이 그립지만 코로나는 그립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노는 사람들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어느새 빨래는 잊혔다. 한참을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듯 놀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빨래가 생각났다. 노트북을 꺼냈다. 어차피 늦은 것 다시 세탁하기로 하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게으른 자의 여행엔 늦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