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이었나 여섯 살이었나. 추운 날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엄마 손을 잡고 발을 동동 거리며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카운트다운을 몇 번이나 세어봐도 신호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자꾸 고개가 전봇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신호등만 보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비어 있는 손으로 고개를 원위치시켰다.
전봇대에는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뱀처럼 똬리를 튼 거 같기도 하고 검정 봉투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상점 조명은 숨기는 법이 없었다. 어떻게 봐도 쓰러져 있는 남자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얼마 전에 읽었던 어린 왕자를 생각했다. 상점가에서 그림을 보여줬다면 보아 뱀이나 코끼리를 그려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횡단보도를 다 건너자 같이 건너온 사람들은 전봇대 옆 남자가 죽은 것 같다고 떠들어댔다. 입김들이 꼭 하얀 깃발 같다. 모두 무엇에 항복하고 있는 걸까. 빨라진 엄마의 걸음에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춥다. 길도 미끄럽다. 이제 엄마가 아무리 빨리 걸어도 내 걸음보다 느리다. 불현듯 생각난 그, 그는 정말 죽었을까. 산책을 하다 잠시 멈춰 서서 입김을 불어 본다. 삶은 매일이 항복이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데 읽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진부하단 생각도 같이 드는 것 보니 읽은 문장은 아닌 것 같다. 산책을 끝내기로 한다. 해야 할 일 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