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일상과 함께하는 무속신앙

파묘를 봤다.

by 조매영

파묘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아랫집을 생각했다. 얼마 전 자기네 문 앞에 시루떡을 두고 반나절이나 꽹과리를 쳤었다. 영화에선 주문도 외우고 그러던데 아랫집은 북소리 아니면 꽹과리 소리뿐이다. 층간 소음을 걱정해서 작게 외우고 있어서 듣지 못한 걸까. 아니다 층간소음을 생각했으면 북소리나 꽹과리 소리도 들리지 않았겠지. 신당을 방음부스 안에 설치했겠지. 사람이 귀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사람을 부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 무당 대신 귀신이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며 살짝 곁눈질로 본 바로는 내가 글 쓰는 방 아래가 신당이었다. 내가 내려와 항의를 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스무 살 때 젊은 시인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시를 쓰다 보면 몰입을 넘어 신내림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꽹과리 소리를 들으며 쓰고 있는 글을 읽거나 아무렇게나 중얼거리고 그 말을 써본다. 배고프다. 저녁으로 뭐 먹지. 아무래도 내 안에는 걸신이 내린 것 같다. 밖에 놓여 있던 시루떡이 맛있어 보이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나?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을 두드리며 내가 찾아왔습니다. 여기 걸신이 왔습니다. 하는 상상을 해본다. 굵은소금 맞겠지.


파묘라는 제목을 보고 앞글자 때문에 파종을 생각했다. 파종을 발음하며 그림을 떠올렸다. 집에 와서야 내가 떠올린 것은 파종이 아니라 만종인 것을 알게 되었다. 파묘는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하여 무덤을 파내는 것을 말한다. 파종은 씨앗을 심는 것을 말한다. 밀레의 그림인 만종은 종소리에 맞춰 두 남녀가 감자밭에서 기도를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파내고 심고 기도한다. 죽은 생명과 새로운 생명이 교차하는 말이다. 영화의 주었던 느낌을 관통한 말이기도 하다. 아무렇게나 뻗었다고 생각한 단어들이 그럴듯하게 묶였다. 직관하고 요약하기 좋아하는 신이 내린 걸까. 입꼬리가 올라간다. 손을 비비며 허공을 봤다. 저기 글 좀 잘 쓰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신은 넉살을 별로 안 좋아하나. 아무 대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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