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길가에 놓인 대답 없는 소묘화

서사 없는 사람은 없다.

by 조매영

아무렇게나 버려진 플라스틱 컵처럼 남자가 누워 있다. 머리가 떡지다 못해 모자처럼 보인다. 야구 모자 같기도 하고 베레모 같기도 하다.


그는 야구 선수였을지 모르겠다. 팀의 에이스였지만 부상으로 방황하다 여기까지 흘러왔을지도 모르겠다. 만년 후보였다가 삶 자체를 기회가 오지 않는 후보로 뒀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직업 군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리를 저지른 것이 걸렸거나 비리를 고발하다 마음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앓는 소리를 내며 앉는다. 온갖 얼룩이 다 묻어 있는 에코백을 거꾸로 든다. 동네의 꽁초란 꽁초가 모두 거기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그중에서 제일 짧은 꽁초를 집어 들어 불을 붙인다. 한 모금에 끝났지만 남자는 아쉬운 표정이 아니다. 몸을 눕힌다. 옆으로 누워서인지 등에 묻은 껌이 존재감을 뽐낸다. 꿈에도 등을 돌린 것처럼 고쳐 눕지 않는다. 그대로 잠에 든다.


그에게 과거는 껌과 같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걸까. 알면 거추장스러울 무엇인 걸까. 한참이나 뒤척임 없는 모습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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