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엄마에겐 우리가 차안대였을지도 모르겠다.

by 조매영

엄마와 통화 중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 듣게 되었다. 막내가 엄마의 지갑을 건들었던 적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언제 그랬냐고 묻기도 전에 막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이라는 말이 뒤를 이었다.


언제부턴가 돈이 평소보다 많이 비었어. 매일 아프다고 골골거리던 네 아빠가 더 많이 가져간 줄 알았다. 어느 날 어린이집에 막내를 데려다주고 돌아서려는데 막내가 학원 비라며 선생님에게 만 원짜리를 쥐어주고 있더라.


바람이 차다. 겉옷의 단추를 닫아도 춥다. 마음이 차가워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에게 뭐라 했냐고 물었다. 엄마는 다른 것은 몰라도 원비는 낼 테니 아이들에게 학원비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 말하고 끝냈단다.


나도 다녔던 곳이다. 내가 7살 때 어린이집을 도중에 그만 다니게 된 것도 원비가 밀려 잘렸던 것일까.


흐릿해진 선생님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그중에 막내 담임 선생님도 있을 것이다. 얼굴을 알아서 뭐 하나 싶다가도 멈추지 않는다. 애 앞에서 학원비 타령을 한 당신은 누구십니까. 분명하게 미워하고 싶다. 아니면 그 당시 화를 내지 못한 엄마에게 짜증이 날 것만 같았다.


경주마는 경주를 할 때 차안대를 쓴다. 겁이 많은 동물이라 다른 말이 따라붙을 시 두려움에 코스를 이탈하거나 한쪽으로 비켜서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에겐 우리가 차안대였을지도 모르겠다. 화를 내다 회사에 지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장의 분노가 우리를 키워주진 않을 테니까.


아무리 떠올려도 누군지 알 수 없는 선생님이,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을 엄마에게 짜증 내려는 내가 미워진다. 목 끝까지 올라오던 욕을 삼킨다. 사레들려 기침이 났다. 수화기 너머 감기를 걱정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다고 답했다.


나도 엄마에게 괜찮냐고 괜찮았냐고 묻고 싶다. 괜찮을 리가 있나. 도저히 물을 수 없다. 엄마는 점심시간이 끝나간다며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보라고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가만히 휴대폰을 보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지각 할 순 없지. 사무실로 가자.



차안대(遮眼帶): 말이 옆이나 뒤를 보지 못하도록 말머리에 씌우는 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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