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끝나갈 즈음이 되면 종종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땅히 할 말은 없고 보통 점심 메뉴를 물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점심에 무엇을 잡수셨냐고 물으려고 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엄마는 꽃이 예쁘게 피었다고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남은 시간에 회사 앞 하천에 꽃구경을 나온 것 같았다. 어떤 꽃을 보고 있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애들이 어릴 적에 꽃구경하러 왔던 곳이라는 말이 들렸다. 기억에 없던 일이었다.
동생들과 왔었다고 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고, 같이 가려고 하면 옆 길로 샜다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거짓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릴 적에 꽃구경 가잔 소리를 들어 본 기억은 없었다.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덜 맞기 위해 골목을 배회하거나 덜 아프기 위해 이불속에 웅크려 있기 바빴으니까.
나의 7할은 밖이 키웠다. 놀이터에서 외로움을 덜었고 친구들의 집에서 끼니를 채웠다. 빈 집은 나를 재워주기까지 했다. 살면서 바깥에 있던 시간들 대부분을 그때 보낸 것 같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자 집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분명 어릴 적에도 좋아했을 것이다. 빈 집에서, 원통 미끄럼틀 안에서 개 짖는 소리, 발걸음이 오가는 소리에 민감해질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아,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종일 집에서 누워만 있고 싶다.
날 두고 꽃구경에 갔다고 해서 결코 서운하지 않았다. 혹시나 지금이라도 꽃구경 가자고 할까 봐, 엄마 말에 납득이 간 것처럼 얼른 맞다고 답했다. 이만 사무실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여지도 주지 않았다. 귀에서 휴대폰을 떼고 엄마가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기를 기다렸다. 엄마와 직장동료가 감탄하며 떠드는 소리가 한참 동안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 어린 내가 꽃나무 아래 서 있는 것을 상상해 봤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끊을 생각을 않는다. 결국 내가 종료 버튼을 눌렀다.
주말에 불광천에 꽃구경이나 한 번 가볼까 했는데 주말에 불광천에서 축제를 한다는 알림 카톡이 왔다. 사람 많겠지. 꽃이 모두 졌을 때 가야겠다. 꽃이 진 자리를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때는 꽃이 졌다고 안 가겠지.
회사로 돌아가는 길 주변을 둘러보았다. 올해는 유난히 지나는 길마다 꽃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정말 꽃이 피고 있긴 한 걸까. 여기저기서 꽃이 폈다는 말로 만개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