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의무화가 해제된 이후로 실외에선 거의 착용하지도 않았는데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는 내가 어색한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그렇게 휘몰아치던 코로나가 잠잠해진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오늘 유난히 그렇다. 집에 다시 들어가 마스크를 찾았다. 코로나 방역 일을 할 때 쓰고 남은 마스크가 몇 장 있었다. 한 장을 집었다. 쓰고 나가려다 그냥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지금 이걸 쓰면 그날로 돌아갈 것 같다.
사람들은 병원이나 보건소가 아닌 곳에서 방역복을 입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확진자 집 앞에서 방역복을 입던 중 마주친 사람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도망가는 것도 본 적 있었다. 코로나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방역복을 벗고 있는 모습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방역복과 소독기를 들고 확진자 집을 향할 때면 사주경계를 해야 했다. 가끔 범인을 찾듯 코로나 걸린 집이 어디냐고 추궁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코로나 예방차원에 골목을 소독하러 왔다고 했다. 그래도 믿지 않으면 소독기를 작동해 어설프게 사방에 뿌리기도 했다. 허공으로 날아가는 약을 보면서도 끝까지 우리를 의심하는 모습을 보면 코로나가 아무리 지독해도 사람보다 못하다 싶었다.
구겨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요양원에 확진자 사망자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은 날이었다. 우리는 요양원 앞에서 방역복을 입지도 않은 채 방역차에 앉아 영구차를 기다렸다.
영구차가 오자 공무직 직원들이 자신들만 다녀오겠다며 건물로 들어갔다. 기간제인 나는 차에서 기다리기 뭐 해 방역차 주변을 서성였다. 유가족으로 보이는 모자가 영구차 주변을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관이 먼저 나왔다. 영구차에 관이 실리자 이번엔 영구차 기사가 올라간 공무직 직원들을 기다렸다. 시신보관소까지 함께 가서 관이 가는 길을 소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모자는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었다. 울음을 참으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어설프게 위로의 말을 내뱉을 생각도 못하게 해주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사망자의 수가 많이 늘었다. 정시에 퇴근하기가 쉽지 않아 졌다. 누군가의 죽음이 슬픔이 아니라 피로로 느껴졌다. 코로나가 별 것 아닌 양 말하는 사람들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은 꿈에서 사람에게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게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인적 드문 곳으로 무작정 떠났다. 사람을 보지 않아야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나온 번화가. 사람이 많다. 멈춰 서서 주머니 속 마스크를 만지작거렸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아서일까. 하고 싶은 말이 줄줄 나온다. 그만 괴로워하라고 코로나가 잠잠해진 것에 너도 한몫했다고 중얼거렸다. 조금은 트라우마가 뜸해지면 좋겠네. 구겨질 대로 구겨진 마스크를 휴지통에 넣었다. 기분이 좋아진 것도 같다. 꼭 맛있는 것을 먹고 돌아가야겠다. 조금 벌어진 상처 맛있는 것으로 마저 다 덮어 버려야지.
코로나 방역일을 하던 당시에 쓴 글도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