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엄마도 아프면 엄마를 찾을까.

by 조매영

두통이 있다. 이마를 만져보니 열감이 느껴진다. 몸에 한기도 도는 것 같다. 증상이 강하지 않은 것을 보니 발만 담근 채, 만만한 몸인지 아닌지 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어제오늘 괜히 짜증이 나던 것이 이 녀석 때문인가 싶다. 올 거면 빨리 오고 갈 거면 빨리 가라.


편의점에 들러 판피린을 샀다. 타이레놀을 살까 하다가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광고 문구가 떠올라 골랐다. 약을 먹었는데도 바로 좋아지지 않네. 생각해 보니 광고 문구가 이상했다. 이미 걸린 감기가 조심한다고 떨어질 수 있나.


속으로 엄마를 중얼거려 본다. 왜 아프면 엄마를 찾게 되는 걸까. 엄마라는 단에는 진통 효과가 숨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갑상선 수술 후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던 엄마가 떠오른다. 많이 아파 보였는데 엄마도 엄마를 중얼거렸을까.


정이 많고 여린 사람. 겁이 많은 사람. 겁도 많으면서 자신의 통증은 또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 폭력을 막아주지 못하던 사람. 엄마에게 들은 할머니는 엄마와 판박이였다. 할머니도 누워 있던 엄마를 봤다면 엄마처럼 자기 탓을 하셨으려나.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중얼거리셨으려나.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 계획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베트남에서 한 달 살기였고 두 번째는 엄마 고향 마을에 가서 엄마에게 들었던 풍경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나면 엄마 고향에 갈 수 있을까. 베트남 여행은 흥미가 사라졌다.


술을 많이 먹던 사람. 폭력적인 사람. 무능력한 사람. 엄마에게 들은 할아버지는 아빠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지긋지긋했으면서 아빠를 왜 만났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런 사람인지 몰랐겠지.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그런 사람인지 몰랐겠지. 엄마가 도망가지 않은 이유는 우리도 우리겠지만 할머니를 닮아서이지 않았을까.


봄이 되면 엄마는 주말마다 나물을 찾아 산이나 들로 향한다. 주말엔 집에서 쉬라고 해도 들을 생각을 않는다. 산에서 나고 자라 나물을 캐는 것이 휴식이라고 한다. 내가 집에 누워 있길 좋아하는 것은 지금은 재개발되어 땅에 파묻힌 달동네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인 걸까.


언젠가 엄마에게 엄마 고향에 한 번 같이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은 적 있다. 엄마는 몸서리치며 싫다고 말했다. 주말에 쉬지 않고 나물 캐러 다니는 것은 고향 탓을 하면서 가기 싫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다, 이해가 갈 것 같다. 풍경이 싫다기보다 사람이 싫은 것이다. 내 어릴 적 동네 사람들처럼 엄마 어릴 적 마을 사람들도 가정 폭력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겠지. 위로조차 하려 들지 않았겠지. 방관자들.


엄마를 반복해서 써서 그런 걸까. 몸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엄마 마을 사람들을 모르니 온전히 엄마가 본 풍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계약 기간이 끝나고 이번엔 꼭 가야겠다. 그런데 며칠을 있을지도 모르고 혼자 가는 것이라 아는 사람도 없으니 숙식 해결 할 곳도 마땅치 않네.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되나. 정신 차리고 일단 오늘부터 조금씩이라도 돈을 모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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